옐친 찾아나선 「탈출 북 노동자」/시베리아 벌목장의 김장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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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러시아 약혼자와 결혼위해 청원서 보내/북 기관원 눈길 피해 6개월간 도피생활
러시아 여성과의 사랑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시베리아 벌목장을 탈출한 한 북한 노동자가 6개월간이나 북한 비밀요원들의 추적을 피해다니던 끝에 러시아 최고지도자들에게 구원을 호소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김장운이라는 이 북한 노동자는 지난 8일 보리스 옐친대통령과 루슬란 하스블라토프국회의장에게 보낸 청원서에서 지난해 8월 하바로프스크주에 있는 북한 벌목장을 무단 이탈했다는 이유로 북한 사회안전부 요원들이 그를 죽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뒤쫓고 있다면서 러시아 정부지도자만이 그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이 청원서에서 그의 탈출동기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마르가리타라는 러시아 여성과의 사랑때문이라고 밝히고 그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러시아정부가 결혼 허가와 함께 영주권을 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벌목장을 탈출하기 전에 결혼을 약속한 마르가리타를 통해 두번씩이나 하바로프스크 영사처에 영주권을 신청했으나 『귀하가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의 국민이었더라면 러시아 시민권을 얻을 수 있으나 북한­러시아간에 체결돼 있는 협정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대답만 들었을 뿐이었다.
벌목장 탈출이후 이리저리 피신생활을 하던 김씨는 북한에 살고 있는 어머니의 안전이 염려돼 방법을 강구한 끝에 스스로 강물에 익사한 것처럼 꾸몄으나 가차없이 추적해 들어오는 사회안전부 요원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탈출 한달만인 지난해 9월 중순 북한 비밀요원들이 마르가리타의 집을 급습,김씨의 행방을 대라며 불법적으로 가택수색을 한 것이다.
이에 격분한 마르가리타는 하바로프스크 검찰청에 찾아가 약혼자의 생명이 극도로 위협받고 있다면서 그의 안전을 보호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러시아 내무부 극동관리국과 국가안전부 당국자들은 오히려 북한으로부터 공식적인 송환요구가 전달됐다면서 약혼자를 귀국시켜야 한다고 설득하려 했다.
김씨와 그의 약혼녀는 그가 북한으로 강제송환될 경우 전례대로 처형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마지막 방법으로 옐친대통령과 하스블라토프국회의장에게 구명을 위한 청원서를 내게된 것이다.
김씨 문제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결정은 3월 초순께 나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젊은 극동인』(6일자)은 현재 북한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 노동자는 최소한 30명 이상이라면서 북한 비밀요원들이 이들을 강제송환하기 위해 추적중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은 지난 87년 소련과 체결한 「임업분야 협조확대에 대한 의정서」에 따라 시베리아에서 약 2만명의 북한 노동자를 동원,삼림벌채를 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북한 기관원들의 가혹한 인권유린으로 국제적 물의를 빚어 왔다.
세르게이 코발료프국회인권위원장은 지난해 2월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회의에서 시베리아의 북한 벌목장에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비밀감옥이 운영되고 있으며 러시아 영토내에서 러시아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성역」이라고 규탄한바 있다.<모스크바=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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