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山寺서 깨닫는 세상의 이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가 구하고자 하고, 떨쳐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생살이에서 언제나 따라다니는 질문이다. 새해 초입, 그에 대한 해답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1년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 경북 봉화군 청량사 주지 지현(47.사진) 스님이 때마침 이런 고민에 싸인 사람을 위한 편지를 보내왔다. 신간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세상을 여는 창 刊)을 통해서다.

청량사는 최근 가을철 산사 음악회를 불교계의 대표적 문화 행사로 만든 사찰이다. 하지만 절은 오지 중의 오지에 있다. 가파른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청량산 연화봉에 있는 청량사에 오르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지현 스님은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종종 '출장법회'를 다닌다. 절에 갈 수 없는 불자를 위해 마을회관을 빌려 법회를 열고, 또 그 자리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경운기를 직접 몰고 다니며 설법을 전한다.

*** 경운기 몰고 다니며 설법

청량사에는 20년 넘게 자란 우람한 목련이 있다. 겨울의 한복판, 지금 그 목련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떨고 있지만 사오월 훈풍이 불면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 윤회의 법칙이다.

스님은 나무에서 진리를 응시한다. "하루하루를 휴지 조각처럼 써버릴 일이 아니다. 당장 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사는 게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말한다. 묵연히 오고 가는 사계의 흐름 속에 꽃을 피우고 떨구는 심묘한 이치를 보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현실은 왜 이렇게 괴롭기만 할까. 스님은 우리의 메마른 이기주의를 지적한다. "모두들 자신과 자기 아내, 새끼들만 알고 가난하고 핍박받는 이웃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야박한 풍토가 이 땅을 장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특히 정치인을 꾸짖는다. "그야말로 부패 공화국이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이제 무색해졌다. 개처럼 벌어 개만도 못하게 쓴다. 개들이 웃을 일이다."

*** 야박한 사회 향해 '죽비'

스님의 질타는 공무원.노동자 등 사회 전반으로 뻗친다. "빈익빈 부익부가 국민 정서를 좀먹고 있다. 공무원들은 해마다 꼬박꼬박 월급을 올려받는다" "연일 파업에 또 파업이다. 국가적 이익, 국가적 체면은 안중에 없다" 등 '죽비'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책은 따뜻하다. 계절별로 옷을 갈아 입는 산사, 자연과 어울려 사는 농촌 사람들이 우리를 넉넉하게 한다. 단지 그런 소박한 진실을 잊고 사는 현대인이 안타깝게 그려질 뿐이다.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