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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편지] 마음에 새겨진 '무소유'의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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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대학생이 되는 지영에게

얼마나 홀가분하니? 합격, 정말 축하해. 수능이 뭐기에 항상 긴장하고 있는 너를 볼 때마다 이모는 늘 미안하고 측은했단다. 이제 밀렸던 잠도 실컷 자고, 보고 싶은 영화나 공연도 실컷 다녀라. 세뱃돈 알아서 두둑히 줄 테니까. 곁들여 네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도 한권 사 놓았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이모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본당 신부님이 주신 책이기도 하다.

무소유라니, 조금 이상하지? 사방에서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가지라고 부추기는 세상에 말이야. 나도 처음에는 건성으로 읽었단다. 그러다 이런 글귀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어.

"일상에서 소용되는 그 많은 물건들, 그것이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자랑거리가 되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날, 이 말은 내 가슴에 그대로 각인되었단다. 화려하고 풍부한 삶보다 간단하고 단순한 삶이 훨씬 멋지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지. 책 말미에 나오는 '낯모르는 누이들에게'도 잊을 수 없다. 내 또래 여고생의 거칠고 야한 말에 놀란 스님이, 겉멋과 속멋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네가 있음으로 해서 네 이웃이 환해지고 향기로워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주길 바란다" 라고 당부할 때, 나는 마치 스님과 단둘이 마주 앉아 있는 느낌이었어.

그 후, 나는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줄 선물은 무조건 이 책으로 통일했단다. 내가 느꼈던 감동과 가르침을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야. 문고판이었던 당시 책값은 2천원. 거기에 카드 한 장 써넣으면 정말 폼나는 선물이 되었다.

지영아. 내게 큰 영향을 준 책으로 난 주저없이 '무소유'를 꼽는다. '간단하게 더 간단하게'라는 내 인생 대원칙의 원천이니까 말이야. 또한 이 책에서 맛본 무소유의 개념 덕분에 헨리 소로의 '월든'이나 '스콧 니어링 자서전' 등 훌륭한 책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었단다.

'무소유'는 내가 가장 여러 번 읽은 책이기도 하다. 서른 번은 족히 읽었을 걸. 눈썹도 빼놓고 가야 하는 세계 배낭여행 길에도 꼭 가지고 다녔단다. 네가 내 '무소유'를 보고, 왜 이렇게 색색가지로 밑줄을 쳤느냐고 물었지? 그건 오랜 세월 동안, 읽을 때마다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달라서 그런 거란다. 간간이 법정 스님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분의 언행일치에 눈이 부시고, 나 자신을 바싹 다잡게 된단다.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랑하는 지영아, 네가 어느덧 이모가 이 책을 처음 만났던 나이가 되었구나. 이제 내가 그 시절 느꼈던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너와 나누고 싶다. 우리 지영이는 어느 구절에 밑줄을 치며 읽을까?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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