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레터] “베스트셀러 읽지 맙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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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베스트 셀러 순위 표를 싣지 않아 불편하다는 독자 전화를 종종 받습니다. “어떤 책이 읽히는지 트렌드를 알 수 없다”고 볼멘 소리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싣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름대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베스트 셀러가 베스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베스트 셀러라는 딱지가 책의 내용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란 점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팩트’입니다. 물론 독자들이 많이 찾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겠지만, 그래서 베스트 셀러 중에 좋은 책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대 베스트 셀러는 어떤 책이라 생각하는지요? 정확히 집계된 것은 아니지만 모 출판사의 운전면허시험 문제집이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책, 흔히 말하는 양서는 아닙니다. 필요한 책이지요. 면허를 준비하는 이에게라면 몰라도 ‘추천도서’는 아니라는 거죠. 극단적이지만 이는 ‘베스트 셀러’의 함정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이제는 ‘셀러’도 아닌 경우마저 있습니다. 출판사가 마케팅으로 만들어 낸,‘베스트바이어’라 할 책도 수두룩합니다.어제 출판학회 심포지엄의 ‘베스트셀러의 부정유통’이란 주제발표(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서점의 판매대를 사고, 인터넷 서점을 중심으로 할인은 물론 해외여행권·자전거 등 덤을 주는 이벤트를 합니다. 사이버 독서동호회를 통해 ‘사재기’를 하고 서평댓글을 달도록 부추긴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바람’을 탄다는 믿음에서입니다.

그러니 실은 독자들 잘못이 큽니다. “남들이 읽는다니 읽어볼까”하는 ‘덩달이 독서’가 우리 출판문화, 그리고 독서풍토를 멍들게 하는 주범입니다. 책을 마음의 양식이라 합니다. 남들이 다 햄버거를 먹는다고 나도 햄버거만 먹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도대체 내가 읽을 책을 남들 따라 편식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러니 베스트셀러, 읽지 맙시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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