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해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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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된데는 그 밑바탕에 독특한 경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게 구미경제학자들의 지적이다. 무엇이 독특한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없지 않으나 대개 일본적 경영의 「3종의 신기」를 얘기한다. 1920년대부터 서서히 뿌리내린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 및 기업별 조합제도가 바로 일본경제성장을 가져온 경영의 골간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종신고용제에 최근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동산과 금융자산 가치가 뚝 떨어지면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거품경제의 불황」으로 작년에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부터 명예퇴직제도가 나오더니 최근엔 지명해고 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다. 평생직장으로 여기는 회사에서 종업원의 퇴사를 종용하는 것은 범죄행위나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해왔던 일본사회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사태다. 그것도 일본 유수의 전자전기제품회사인 파이오니어사에서 무려 35명의 관리직에 그같은 통보를 내렸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기업의 인사제도는 문화권을 달리하는 우리나 일본과는 차이가 있다. 구미에서는 경제사정의 악화에 따른 경영합리화 조치로 종업원의 해고를 단행하는 일이 잦다. 컴퓨터 업계의 거인 IBM은 작년에 4만3천여명을 해고한데 이어 올해 2만5천명을 추가로 해고할 계획이다. 세계최대의 자동차 메이커인 GM과 항공기 제조회사 보잉도 대량 해고의 회오리를 맞고 있다.
일 파이오니어사에서 퇴직을 지명받은 사람들은 50대의 기술자와 연구원 및 영업파트의 관리직이었다. 그들은 시장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사업을 찾아내는데 적응력이 떨어졌다. 지명퇴직 사태에는 저성장시대에 독특한 기능과 지식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누구나 그런 일을 겪게될 것이라는 경고가 들어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늘어나는 명예퇴직자들의 직업교육과 산업구조 변화에서 오는 유휴인력 활용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런 일도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게 됐다.<최철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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