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왕국」 오명 벗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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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교통사고 감소 5개년 계획의 실천에 들어간 첫 해인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92년의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91년보다 11.8% 줄어든 1만1천3백62명으로 나타났다. 비록 단 한해의 통계이나 이같은 결과는 교통사고 증가는 결코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라 노력만 하면 줄여 나갈 수 있는 「인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제는 교통사고의 고삐를 잡았다고 낙관할 일은 결코 아니다. 경찰청의 분석으로는 지난해의 사망자 감소는 운전자들의 준법의식이 높아졌다거나 교통시설 등 각종 교통관계환경이 개선된 결과가 아니라 집중적인 단속과 지도의 반짝 효과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교통사고도 노력하면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고무적이다. 이를 계기로 안전대책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올해를 「교통사고줄이기 자율실천의 해」로 정하고 각종 대책을 실천해 나가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교통사고의 예방에는 왕도가 없다. 사고의 대다수는 여러가지 요인이 얽히고 설켜 일어나는 것이라 예방책 역시 복합적·종합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다만 큰 줄기를 잡는다면 두가지다. 하나는 정부가 해야할 일이고 또 하나는 운전자인 국민이 해야 할 일이다.
지난해 단속에 의해 반짝 효과를 보기는 했지만 정부는 교통사고 예방을 단속에만 의존하려는 안이한 생각을 해선 안된다. 역시 근본적인 대책은 투자다.
현재와 같이 열악한 도로조건이나 교통신호체계,운수업계의 전근대적 경영체계아래서는 사고의 잠재요인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런 요인을 줄여나가는데는 투자가 필요하다. 예산이 부족하다 하지만 한 해에 5조원이 넘는 교통사고 피해 발생을 감안하면 교통에 대한 투자를 과감히 늘려도 결코 낭비는 아니다. 그런테 투자의 증액은 커녕 범칙금 등 교통관계로 거둬들이는 돈조차 다른데 돌려쓰고 있는 형편이다. 사고를 줄이는데는 투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정부안에 확립되어야 한다.
사고를 줄이는데는 일반 국민도 반쪽몫은 담당해야 한다. 법과 제도가 미비한 탓도 있지만 운전자들의 낮은 법의식과 성급함도 우리나라를 세계 제1위의 교통사고 왕국으로 만드는데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속도제한 같은건 아예 염두에도 없고 조금만 틈이 보이면 끼어들기 예사고 교통규칙을 제대로 지키려는 운전자들을 되레 욕하는 것이 우리의 교통문화다. 끼어들기 하나만 하지 않기로 해도 사고는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당국도 이런 점에 착안해 단속의 중점도 달리하고 교통규칙의 준수가 체질화할 수 있게 교통교육의 강화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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