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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개발 현장 창싱다오를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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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 공항에서 서북쪽으로 107㎞, 자동차로 1시간20분 남짓 달려가니 눈앞에 창싱다오(長興島)가 나타났다. 면적이 129㎢로 중국에서 다섯째, 창장(長江) 이북의 해안에서 제일 큰 섬이다. 인구 7만여 명의 어촌이었지만 지금은 전역이 공사장으로 변했다고 할 만큼 개발이 한창이다. 이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길이 300m의 창싱대교를 건너면서 보니 바로 옆에 새 교량이 건설되고 있다. 섬의 중앙을 가르는 도로는 확장 포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대형 상하수도 관로가 도로 옆에 일렬로 도열해 있었다.

동서 폭이 35㎞나 되는 이 섬의 서남쪽에서는 대규모 항만 공사가 한창이었다. 한국의 조선업체 STX가 건설 중인 조선소가 그 인근에 있었다. 육중한 크레인이 자재들을 나르고 20t짜리 화물차들도 분주히 오가며 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창싱다오는 2020년까지 대대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해 인구 100만 명 규모의 중견 공업도시로 탈바꿈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다롄시는 지난해부터 3년간 187억 위안(약 2조2440억원)을 투입해 사회간접자본(SOC)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대규모 산업 도시 개발을 중국 기업이 아닌 싱가포르 국유 기업이 맡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싱가포르 국토 면적의 3분의 1에 달하는 산업도시 개발을 정부 대 정부의 합작 사업 형식으로 진행하는 특이한 사례다.

◆싱가포르, 밑그림부터 도맡아=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하면서 아시아 최고의 도시국가로 거듭 태어난 경험이 있다. 93년엔 장쑤(江蘇)성의 고도인 쑤저우(蘇州)의 산업단지 개발을 맡아 14년 만에 중국 최고의 전자공업도시를 조성, 삼성을 비롯한 세계적 기업들을 불러들였다.

낙후한 동북지역개발(東北振興)을 추진 중인 중국 정부는 창싱다오를 중점 개발 대상으로 정하고 '미다스의 손' 같은 싱가포르를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구체적인 개발 프로젝트는 싱가포르 무역공업부 산하 국유기업인 위랑(裕廊)그룹의 '위랑 인터내셔널'이 맡았다. 이 업체는 쑤저우를 비롯한 중국 20개 도시에서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200건이나 수행한 베테랑 기업이다. 창싱다오 개발은 이 회사가 그린 밑그림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리콴유의 개발 훈수=싱가포르의 경험과 노하우에 가장 먼저 주목한 사람은 리커창(李克强) 랴오닝성 당서기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이을 차기 지도자 감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는 2005년 1월 싱가포르 외무장관을 만나 개발 참여를 요청했다. 그해 6월 싱가포르와 랴오닝성은 경제무역이사회를 열고 창싱다오 개발을 양국 정부 차원의 합작사업으로 승격시켰다.

리 서기는 올 5월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선임장관을 랴오닝 성도인 선양(瀋陽)으로 초대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싱가포르의 도움을 받아 창싱다오를 '동북의 쑤저우'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자 리 선임장관은 "창싱다오 개발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흥미진진한 프로젝트"라며 "불모지 위에 공업도시를 세우려면 막대한 인프라 투자가 필수적이므로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싱가포르, 인프라 수주 독식=개발 밑그림에 살을 붙이는 작업도 상당 부분 싱가포르 국유 기업들이 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완방(萬邦)그룹은 다롄항(大連港) 그룹과 공동으로 12억6000만 위안을 투자해 창싱다오 항만을 건설하고 있다. 이 업체는 대형 컨테이너와 유조선 수리소도 건설 중이다.

싱가포르 에너지 기업인 성커(勝科)그룹은 중국전력과 손잡고 25억 위안을 들여 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다. 다롄시 제2항구 건설에도 싱가포르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다롄 시내의 소프트웨어 파크 2기 건설 사업에도 싱가포르의 텅페이(騰飛)사가 지분 50%를 투자했다.

창싱다오에서 싱가포르는 도시국가 건설의 노하우를 활용해 '제2의 쑤저우' '제2의 싱가포르'를 건설하고 있었다.

창싱다오=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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