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닥 안잡히는 「노­전 화해」/노 대통령 퇴임전에 만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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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공 각료 초청 등 유화 메시지 청와대/“정치적 쇼” 의심 불신감 그대로 연희동/극적타협 없으면 YS 취임식때 “어색한 조우”
노태우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임기(2월24일)가 끝나기 전에 만나 화해할 수 있을 것인가.
노 대통령은 최근 뒤늦게 전임자에 대한 유화메시지를 잇따라 보내고 있지만 전 전 대통령쪽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연희동측은 노 대통령의 그같은 몸짓에 체중이 실려있는 것이냐에 대해 근본적으로 믿지 않는 눈치며 청와대측은 그렇다고 국가원수 입장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할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난감해 하고 있다.
그러나 노­전 두사람은 오는 25일 김영삼대통령취임식에서 만남을 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사전에 극적 화해가 없으면 그야말로 두사람은 기묘하게 맞다뜨릴 수 밖에 없는 운명이며 그것이 국민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
○…6공 출범이후 감정 대립과 오해로 수차례 어려운 고비를 맞았던 양측은 노 대통령의 퇴임에 앞서 화해를 위해 그동안 음양으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두사람의 정치적 위치가 전·현직 대통령이고 40년 우정이란 독특한 상황이 작용돼 무산됐다.
가장 최근엔 구정을 전후해 노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을 찾아가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역시 불발됐다. 청와대의 일부 참모들은 구정을 놓치면 퇴임전에는 달리 만날 기회를 만들 수 없다는 판단아래 노 대통령이 전격방문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이 지난 연말 여론의 역풍을 무릅쓰고 전경환씨 등 친·인척 8명을 비롯한 5공비리 관계자 16명에 잔형면제 등의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여건이 조성됐다고 봤다.
친·인척의 사법적 종결은 연희동측이 강력히 희망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사전 정지작업을 해놓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노 대통령의 연희동방문을 전 전 대통령이 수용할 것으로 봤다.
연희동측도 그런 기류를 감지,노 대통령이 찾아오는 경우에 대비한 나름의 대책을 강구했었다.
대통령이 명절에 오랜 친구인 전직 국가원수를 찾아가는데 크게 흉될게 없고 과거 전 대통령도 노 대통령당선자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는 『굴복의 인상을 주면서까지 결행할 이유가 없다』는 일부 참모의 완강한 반대에 노 대통령이 동조해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그 이후 연희동측 기류는 급랭해 전 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 대한 불유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이렇듯 완전히 물건너간 듯하던 노­전회동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은 노 대통령이 언론인터뷰를 통해 다소 강도높은 사과를 피력하고 5일에는 5공 전 전 대통령 휘하의 각료들을 청와대로 초청,더높은 수위의 유감표명을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31일 한 일간지와의 회견에서 『5공의 업적은 6공의 민주화과업에 초석이 됐다』며 『전 전 대통령이 많은 치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한채 의회증언이나 산사칩거 등 어려움을 겪었던 점에 대해 매우 가슴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5공이 「6공민주화 초석」이었다는 것은 처음 나온 말이고 노 대통령으로서는 마음먹고 표현한 사과의 말이다.
노 대통령은 연희1,2동의 지척에 살 두사람이 등을 돌리고 있다면 만인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점을 무척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측의 이같은 움직임에 전 전 대통령측은 냉소적이며 마지막까지 정치쇼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노 대통령이 진심으로 40년 우정과 전·후임간의 의리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화해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고 방법은 문제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91년 전 전 대통령 장모상때 자연스런 문상을 할 수 있었으나 김옥숙여사만을 보내 연희동쪽의 섭섭함을 오히려 증폭시켰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청와대는 전 전 대통령 추종자들의 정치행위를 단속하고 전 전 대통령을 감시했다고 연희동측은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는 작년 하반기부터 안교덕수석과 이현우안기부장이 창구가 되어 안현태 전 경호실장을 통해 내밀한 접촉을 벌이면서 화해의 시기·방법을 절충해 왔으나 『6공이 5공에 사죄하는 형태는 곤란하다』는 청와대측과 『먼저 노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무조건 사과해야 한다』는 연희동측의 기본 시각을 좁히지 못했다.
여권 주변에선 노­전 두사람이 만나기만 하면 불과 몇분만에 5,6공 화해까지를 포함한 모든게 해결될 수 있으나 「안주인」간 감정대립과 일부 측근들의 이해 등이 얽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때문에 결국 두사람은 노 대통령 퇴임후 우여곡절끝에 회동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이 많다.
노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퇴임후를 대비한 명분축적용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최근 노 대통령과의 화해를 거의 단념한채 새로운 생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공 5년간의 유배,자택칩거생활을 청산하고 5년만에 출·퇴근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시내에 사무실을 얻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부담없이 해외여행을 하면서 비로소 전직 대통령으로서 한발 떨어져 나라를 돕는 일을 찾아 보겠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급증한 내방객들에게 백담사시절,노 대통령과의 관계 등을 관조하듯 설명하고 있으나 노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앙금을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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