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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들 출판기념회 잇따라 여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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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이 출판 기념회를 잇따라 열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대선주자로 언급되고 있는 후보 중 10여 명은 이미 출판기념회를 겸한 대선 출정식을 치렀다. 자신의 정치 구호와 인생의 희노애락 등을 담은 저서를 통해 대중성을 확보하고 선거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인 집회를 열어 다른 주자들에게 ‘세(勢) 과시’를 하기 위해서다.

◇대선 출마 선언 신호탄=“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면 10년 후에 국민소득 4만불 시대가 열리고, 연평균 7%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세계 7대 강국에도 진입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 대선 주자인 이명박(66) 전 서울시장은 3월 김영삼 전 대통령,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2만여명의 지지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온몸으로 부딪혀라』『어머니』『이명박의 흔들리지 않는 약속』 등을 내놓으며 당 대선후보 경선과 연말 대선을 향한 매머드급 ‘세(勢) 몰이’에 나섰다.

범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 정동영(54)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5월 출판기념회를 열고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 행사는 정 전 의장의 지지모임인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소속 회원과 일반인 50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진행돼 대권 출정식이나 다름 없었다.

전직 장관들의 대선 출마 선언을 위한 출판기념회도 올 초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강운태(59) 전 내무부 장관은 1월 자신의 정책 구상을 담은 책 『똑똑한 정부 빛나는 대한민국』의 출판기념회를 갖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민주적인 경선 절차를 거쳐 대통령 후보로 나서 국민의 평가를 직접 받겠다”고 밝혔다. 김영환 (52)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지난해 출간한 『덧셈의 정치 뺄셈의 정치』로 3월 대선출정식을 겸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김두관(48) 전 행자부장관은 지난달 18일『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출판기념회에서 ‘친노’주자로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최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천정배(53)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3월『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춤추어라』(차병직 공저)는 제목으로 출판기념회를 열며 범여권 통합 의지를 다졌다. 꾸준히 범여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문국현(58) 유한킴벌리 사장은 4월 『지구 온난화의 부메랑-황사 속에 갇힌 중국과 한국』을 펴내면서 본격적인 정치행보에 한 발짝 더 다가선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출판기념회 가속화=6월부터 대선 후보들의 출판기념회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김병준(53) 대통령 정책특보는 지난달 11일 『높이 나는 연』 출판 기념회에서 대선 출마를 묻는 질문에 “책을 낸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답했다. 신기남(55)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같은 날 『신기한 남자는 진보한다』 출판 기념회에서 “민주주의, 정치개혁에 이어 복지문화국가 건설이라는 세 번째 꿈을 이루기 위해 앞장서 나가겠다”며 대선 주자임을 자임했다. 경제통으로 꼽히는 신국환(68) 통합민주당 의원도 『희망의 대한민국 4만 불 시대를 연다』를 지난 달 13일 출간했다.

최근 4년 만에 민주당에 복당한 이인제(59) 의원은 19일 『한라에 서서 백두를 보네』출판기념회를 열며 정치적 명예회복을 위한 대선출마 카드를 내밀 예정이다. 열린우리당 유시민(48)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사회투자국가 전략에 대한 1000여쪽 분량의 책 집필작업을 끝내고 이번 달부터 전국 순회 출판 간담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55) 전 한나라당 대표와 손학규(60) 전 경기도 지사도 조만간 출판기념회를 통해 인지도와 지지도 사냥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판매 부수’보다는 세 확산=대선 후보들의 책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초판 1쇄를 2000~3000천 부 이상 찍지 않았다. 올 들어 출간된 대선 후보들의 저서 가운데 2쇄 이상 인쇄한 책은 단 두 권. 인쇄한 책이 모두 팔렸는지 여부는 각 출판사의 대외비지만 “아마 다 팔지 못했을 것”이라는게 출판계의 시각이다. 대부분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는 내용 위주여서 유권자이기도 한 독자들은 별 흥미를 못 느껴 판매 부수가 저조하다는 분석이다. 출판업계 한 전문가는 “책 값의 10~15% 정도가 인세로 들어오는데 1쇄 3000부를 다 팔아도 300만~500만원 정도 번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말했다.

짭짭한 부수입과는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대선 시점에 맞춰 책을 출간,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은 법이 정한 테두리에서 인정된 합법적인 선거운동이기 때문이다. 선거법 87조 2항에 따르면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는 사(私)조직으로 분류돼 법적 제재를 받지만 출판기념회에 모인 지지자들은 사조직 범주 내에 들지 않는다.

선거컨설팅 이윈컴 이성진 팀장은 “출판기념회는 세 확인과 조직 점검을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집회다. 참석 여부에 따라 자신의 라인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권자에게 ‘그들만의 리그’로 비춰지는 것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남영 세종대(정치학) 교수는 “기회 비용을 생각했을 때 출판기념회를 통해 후보의 세력 재결집을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시간에 시장 한 곳이라도 더 둘러보는 것이 나을 것인지는 각 캠프에서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만 수요자인 유권자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공직선거법 130조의 규정에 따라 정당 또는 후보자의 명의를 나타내는 서적의 광고나 입후보 예정자와 관련 있는 저서의 출판 기념회는 선거일전 90일인 9월 20일부터는 일체 금지된다. 따라서 9월 19일까지 대선 예비후보의 출판기념회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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