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 한국인 많이 구했죠"|2차 대전 때 사이판 미 해병영웅 현지정착 가이 가발돈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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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차대전의 미 해병영웅 가이 가발돈(68·Guy Gabaldon)씨가 28일 내한했다. 전쟁영화『지상에서 영원으로』(원저l From Here to Eternity)의 실존인물인 그는 1944년 6월 미군의 사이판대공세에서 일본군 1천5백여 명을 혼자 생포함으로써 유명해졌고 이런 공로로 미 해군최고의 훈장인「네이비크로스」를 수여 받았다.
가발돈 씨는 당시 18세의 어린 나이로 전선에 투입돼 일본군에 의해 사이판 섬에 끌려간 조선인 남녀 노무자·군속 등도 다수 구출한 바 있다. 지난 84년 첫 방한 당시 탤리비전 출연을 계기로 사이판에서 자신이 구출한 몇몇 한국인과 연락을 하기도 했다는 가발돈 씨는『구출된 조선인여성은 대부분 정신대였다』고 증언했다. 그는 정신대의 일원이었던 최 모씨 등의 사진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의 일본인 타운 근처 한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어에 익숙해 많은 수의 일본군을 생포할 수 있었다는 것. 이는 소대장 묵인 하에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혼자 출동, 주로 설득을 통해 한 달간「1인 작전]에서 하루 평균 50여명의 일본군을 생포했다.
가발돈 씨는 당시 어려서 겁이 없었다며『지금은 명령을 받아도 출동을 꺼릴 것 같다』고 웃는다. l m60cm정도의 키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그는 사이판전투에서 일본군 정찰대의 기관총에 복부 관통상을 입어 허리와 손목부위에 지금도 큼직한 상처가 남아 있다.
스페인 계의 미국인인 가발돈 씨는 종전 후 멕시코에서 자가용비행기 사업을 벌여 상당한 부를 축적한 후 지난 80년 전 재산을 정리, 사이판에 영구 정착했다. 그는 현재 사이판전투에서 희생당한 미군 4천여 명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탑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이미 사이판현지에 건립된 일본군 위령탑을 찾는 일본인이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침략자의 위령탑이 신사참배장소 화되고 있는데 대해『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고 말했다.
위령탑건립을 맡게 될 부산의 한 건설업체초청으로 방한한 가발돈 씨는 지난 90년 그가 출간한『자살의 섬, 사이판』의 한국 출판문제 등도 아울러 협의한 후 오는 2월 1일 돌아갈 예정이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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