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상황이 완화되는 일부 징후가 있다"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발언이 나라 안팎에서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는 3일 평양에서 양제츠(楊潔.57) 중국 외교부장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북핵 문제가 고비를 넘어 대화와 타결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에서도 김 위원장의 발언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신화통신을 비롯한 관영 언론들은 "김 위원장의 발언이 매우 이례적"이라고 언급했다. 핵 포기 의사까지 담은 발언이라는 확대 해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도 김 위원장이 한반도 정세에 만족감을 나타내고 2.13 합의 초기 조치 이행을 강조한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핵 문제에 대한 그의 발언을 북한 관영 매체가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다. 이에 따라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 측의 영변 핵 시설 폐쇄.봉인이 확실히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일고 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한국이 다음주 북한에 보낼 중유 일부를 선적하면 북한은 영변 원자로 폐쇄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며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력해 초기 조치를 잘 이행할 것이며, 그에 따라 이달 중 6자회담이 재개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6자회담 당사국 외교장관 회의가 열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박의춘 북한 외무상이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지속하면 6자회담 진전이나 북.미 관계 개선 속도가 예상외로 빨라질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건 김 위원장의 핵 폐기 의지다. 그의 입에선 아직까지 '초기 조치 이행'만 나왔을 뿐이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김 위원장의 발언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6자회담과 2.13 합의의 틀 속에서 핵 폐기를 위한 노력을 하겠으니 그에 상응하는 체제 보장과 경제적 보상 약속을 이행해 달라는 뜻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한 외교 당국자는 "중국은 양제츠 외교부장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북.미 관계와 북핵 문제를 다 풀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충고했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북한이 2.13 합의 2단계 이행에서 애를 먹일 경우 미국은 거기에 맞춰 대북 관계 개선 조치를 유보할 것이고, 그럴 경우 문제는 다시 꼬일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베이징=이상일.장세정 특파원,서울=이영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