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돌풍 바둑계 정상육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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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바둑계의「강한 10대」들이 각종 기전에서 강세를 보이며 기존의 판도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들은 입단하자마자 70%에 가까운 승률을 올리며 바둑계의 중진들을 무차별 공략하고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 등 4인 방까지 무너뜨린다. 이들 10대들은 왜 강하며 빠른 속도로 진보하고 있을까.
지난해 이들 10대중 윤현석 3단(19)이 KBS바둑왕전 준결승에서 조훈현 9단을 꺾어 화제를 모으더니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18세의 윤성현 3단은 김수장 8단을 2대1로 꺾고 패왕전 도전자가 됐다. 양 건 초단(17)은 지난해 7월 프로가 되자마자 첫 출발한 박카스 배에서 4연승을 거두며 본선에 진입했다.
이상훈 3단(19)은 명인 전·MBC제왕 전 본선에서 활약하고 있고 김승준 2단(19)도 명인 전·박카스 배 본선에 올라 있다. 최명훈 2단(18)은 지난해 총 전적 34승13패로 72·3%의 승률을 올려 4단 이하에서 승률 1위를 기록했다.
바둑계는 이들 10대들이 급속도로 강해진 이유 중 첫째는 유창혁5단·이창호 6단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훈현 9단·서봉수 9단 시절엔「모여서 연구하는 일」은 하기 않았다. 두 사람이 대국하면 복 기도 거의 하지 않았다. 옛날 일본의 쟁기시대에 바둑 4가문이 자신들의 비수를 감춰 두었다가 중대시합에 사용했듯이 이들도, 자신의 내면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충암고 동문인 유창혁·이창호는 5년 전 결성된 충암 연구회를 통해 대부분 충암 출신인 바둑 후배들에게 자신들의 기예를 그대로 전수해 왔다. 최근엔 10대들만의 소소회(회장 김승준 2단)가 발족, 수시로 실전을 벌이는데 이창호 6단은 여기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국기원 주변에 설치된 두개의 연구실에서 당대 최고수의 기예를 배우고 있는 이들 10대들은 바둑 한 수를 배우기 위해 불원천리 하던 조남철·김 인·조훈현에 비해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기원의 연구생제도도 강한 10대들을 배출해 낸 원동력이 됐다. 이창호 선풍은 바둑에 어린이들을 몰리게 했고 이들은 과외 등 엄청난 경쟁 속에서 프로가 된다. 기초가 탄탄한데다 일찍 프로가 되어 대성의 기량을 갖추게 된다. 일례로 양 건 초단은 입단대회는 3승2패로 간신히 통과했으나 프로가 되더니 6연승했다.
연구생 중엔 미완의 대기가 많다. 그들을 이창호·유창혁이 가르치니 강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제 10대들은 선배 프로들에게 대견스런 존재가 아니라 공포의 대상으로 변하고 있다.
이창호 6단은『내가 크게 나은 것도 없다』하고, 유창혁5단은『나도 맞붙으면 자신이 없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 바둑계에선 유·이 두 사람을 놓고 한국바둑계의 장래를 위해 큰일을 해내고 있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박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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