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61. 게리 플레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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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의 사나이’ 플레이어.

 세계 골프계에서 아널드 파머, 잭 니클로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빅3’로 불리는 골퍼가 있다.

 게리 플레이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플레이어는 1950년대 후반 미국으로 진출, 세계 무대를 주름 잡았다. 4대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US오픈·브리티시오픈·PGA챔피언십를 모두 석권, 가장 먼저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골프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를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함께 라운드를 한 것은 87년 장제스(蔣介石) 대만 총통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는 골프대회에서였다. 대만은 세계 정상급 골퍼들을 초청해 대회를 열었다. 그 대회에서 플레이어와 한 조를 이뤄 경기를 하게 됐다. 그때 국산 팬텀 공을 갖고 출전했다. 93년까지 팬텀의 상근 고문을 지냈었다.

 첫 홀에서 드라이버 샷을 날렸는데 나와 플레이어의 공이 엇비슷한 거리에 떨어졌다. 플레이어는 내 덩치를 보고서는 자기 공이 더 멀리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가까이에 있는 공을 지나쳐서 내가 먼저 세컨드 샷을 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내 공인 줄 알았던 게 플레이어의 것이었다.

 “게리, 이게 당신 공이다.”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플레이어는 “오, 이게 당신 공이구나. 그런데 이거 무슨 공이냐”고 물었다.

 “코리안 팬텀 볼이다. 당신은 혹시 비행기 팬텀 아느냐? 이 공은 그 팬텀처럼 빨리, 멀리 나간다”라며 손으로 비행기 모양을 그려 보였다. 플레이어가 “라운드 끝나고 나도 그 공을 좀 써보게 몇 개 줄 수 있겠느냐”고 해서 그에게 팬텀공 세 개들이 한 줄을 선물로 줬다. 상품 광고 효과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팬텀의 상임고문 노릇을 제대로 한 것이다.

 그는 가난을 딛고 일어선 선수라고 한다.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강훈련으로 팔이 길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같은 노력의 결과인지 그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장타를 날려 세계 무대에서 명성을 떨쳤다.

 대만 대회 기간 내내 비가 내렸다. 플레이어는 장갑을 여러 개 바꿔 끼며 라운드를 했다. 장갑이 젖으면 우산살에 매달아 말려가면서 샷을 할 때마다 장갑을 바꾸는 듯했다. 그는 그만큼 동작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했다. 정말 모범적인 플레이어였다.

 마스터스 주최 측은 몇 년 전까지 아널드 파머, 잭 니클로스와 게리 플레이어 등 이른바 골프계 ‘빅3’를 같은 조에 넣어 라운드를 하게 했는데, 갤러리가 가장 많은 최고 인기 팀이었다.

 플레이어는 ‘마스터스의 사나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오거스타내셔널 골프코스와 긴 인연을 맺었다. 마스터스 대회에서 통산 3승을 올린 그는 올해 50번째 마스터스 출전 기록을 세웠다. 그가 59년부터 82년까지 23년간 세운 최다 연속 컷 통과 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 같다.

 아무리 어려운 벙커에서도 신들린 듯 핀에 공을 척척 붙였던 플레이어. 그의 멋진 벙커샷은 정말 그림 같았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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