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순수성 회복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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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이념, 혹은 사회과학의 올가미로부터 문학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날로 기승을 더해 가고 있는 문학의 상업성은 어떻게 극복해 내야 할 것인가. 이념과 상업성 사이에서 소외·실종돼 가는 문학 찾기에 본격문단이 발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주요 문예지 최근호들은 좌담이나 특집 등을 통해, 평론가들은 평론집으로 직접 90년대 문학의 흐름을 진단하며 본격문학수호에 고심하고 있다.
유신과 광주로 상징되는 70, 80년대는 문학에서 이념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이든, 군부든 억압대상이 명확했던 상황에서 문학은 당위적 일체감을 갖고 신념이나 이념체계 하에 모여 창작활동과 함께 사회개혁운동에도 동참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국내의 상황변화와 더불어 이념이나 신념에 기댄 참여문학의 정체된 자리를 상업주의문학이 차고 들자 순수·참여 가릴 것 없이 문단전체가 문학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70, 80년대 진보적 문학을 이끌었던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 최근 펴낸 평론집『우리시대의 소설 읽기』(도서출판 글간)에서『변혁운동을 문학이 책임질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며『이제 문학은 미학과 인간성의 풍요로운 정서를 가꿀 것』을 요구했다. 임씨는『우리소설은 그 동안 외래의 수입품 사실주의의 채찍 아래서 너무 꿈을 잃은 느낌도 있다』면서『이제 소설을 비평으로부터 해방시키자』며 문학에서 철 지난 이념의 굴레는 벗겨 주자고 주장했다.
한편『현대문학』1월 호, 반년간지『오늘의 소설』『오늘의 시』92년 하반기호는 좌담을 통해 최근의 문학흐름을 진단하면서 문학에 스며든 상업성을 해부하고 있어 주목된다.
문학평론가 권성우씨는『오늘의 소설』에 실린 좌담에서『젊은 작가들이 등단하자마자 단편소설에 대한 절차탁마 없이 곧바로 장편의 세계로 나가는 경향이 요즈음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며『이는 무엇보다 커다란 물건을 빨리 만들어 경제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출세의 길을 달려나가겠다는 조급한 상업성』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상업성은 젊은 작가들뿐 아니라 중견작가들까지 유혹하며 그들이 10∼20년간 이룩한 문학적 성과에서 벗어나 대중취향에 영합하게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이러한 상업성보다 상업성이 교묘하게 문학이론으로 무장한 채 문학의 존재이유를 뒤흔들고 있는 게 문제다. 소위 후기산업사회의 사조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업고 90년대 들어 부쩍 늘기 시작한 패러디(풍자)·패스티시(혼성 모방)·키치(오락예술)등을 해부한『오늘의 시』좌담에서 문학평론가 권택영씨는 이러한 것들을 원본 대신 그와 같은 환상을 우리에게 주는 대용품, 이른바「복제문화의 산물」로 보았다.
패러디·패스티시·키치를 역시 산업사회의 산물로 본 문학평론가 김준오씨도 같은 대담에서『그러나 이런 것들은 예술을 다시 삶으로 복귀시키고자 하는 전위예술의 시도가 결국 상업주의로 흡수된, 실패한 현상』이라고 지적하며 이런 것들이 진짜 문학행세를 하고 있는 점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시인 김수복씨는『현대문학』에 실린 좌담에서『상업주의와 문학성을 혼성시켜 독자의 감성을 사로잡는 것이 곧 문학의 새로운 방법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며『문학이 상업성을 Elf 때 그것은 곧 문학이 지켜야 할 마지막 과제인 인간성 회복이라는 문학적 가치는 약화되게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들에서 이제 우리문단은 80년대의 이념 지도비평시대를 넘어 문학성 수호비평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문학을 말살하는 일체의 비문학적 요소를 배척하면서 어떻게 문학의 지평을 넓혀 가야 하느냐가 93년도 본격문학의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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