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투적 노동운동은 완전히 실패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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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1일간 대전 시민의 발을 묶었던 시내버스 파업이 3일 끝났다. “조금 불편해도 참을 테니 시민을 볼모로 삼은 노조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지 마라”는 대전 시민의 분노의 목소리에 시내버스 노조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준공영제를 시행 중인 대전 시내버스 노조는 사용자인 대전시에 무리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종전 같았으면 도시 교통의 마비를 우려한 시 당국이 울며 겨자 먹기로 노조의 요구에 적당히 타협했을 터였다. 노조는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시민들이 나섰다. 시민들은 준공영제에서 임금을 올린다는 것은 대전시 재정 지출의 증가를 의미하고, 종국에는 시민들의 세금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준공영제가 얼마나 방만하게 운용돼 왔는지도 알게 됐다. 시민들은 시 당국에 노조와 타협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또 차제에 준공영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든지 아니면 폐지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결국 노조는 백기를 들었다. 시민들의 단합된 힘 앞에 타성에 젖은 시내버스 노조의 불법 파업 관행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이번 대전 시내버스 파업은 시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무분별한 투쟁 위주의 노동운동이 어떤 결과를 빚는지 선명하게 보여 줬다는 점에서 뜻깊다. 마침 이날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한 강연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전투적 조합주의’로 열심히 싸우는 것을 잘한다고 착각하고, 결과는 보지 않는다”면서 “한국사회의 노동운동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이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위기에 처했다는 고백이다. 현장의 조합원과 일반 시민이 외면하는 노동운동은 더 이상 존립할 수 없다는 경고다.

 이 와중에 2년 연속 적자에 빠진 기아차는 노조가 지난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파업에 이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또다시 파업에 돌입했다. 기아차 노조는 시민과 소비자가 등을 돌리면 일자리가 날아갈지 모르는데도 부나비처럼 파업의 불꽃에 뛰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