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회장 공백 장기화 조짐 한화호 어디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김승연 회장이 석방되지 못함에 따라 한화 호(號)의 선장 부재 상황이 장기화 조짐이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거나 그 전에 보석 허가가 날 가능성도 있지만, 한화는 일단 총수의 장기 수감 대비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한화는 5월 11일 김 회장이 구속된 뒤 금춘수 경영기획실장을 중심으로 부회장단 및 경영기획실 내 각 팀장이 매일 모여 경영 현안을 논의해 왔다. 그룹 관계자는 “회장의 금세 복귀하지 못하게 돼 조만간 사장단이 모여 회장의 장기 공백 사태에 대비한 비상경영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상적 경영은 이미 계열사별 자율 체제가 갖추어져 있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다만 김 회장이 직접 챙겨온 해외 사업은 그의 부재가 길어질 경우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한화는 10%에 지나지 않는 해외 매출을 2011년까지 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석유화학·건설·금융 등 각 계열사 별로 추진해 온 대형 해외사업은 16건, 금액으로 총 10조원 가까이 된다. 한화 관계자는 “해외 사업 파트너들은 대개 오너가 와서 협상을 손수 마무리짓길 원해 사업 추진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계약 성사 단계까지 갔던 70억 달러 규모의 중동 지역 석유화학 합작 사업은 무산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이는 한국 업체 최초로 중동 현지에 석유화학 합작사를 세우는 프로젝트다. 실무 급 협상은 거의 마무리됐으나 양 측 총수 간 담판을 짓는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룹 측은 “우리 쪽 결정이 늦어지자 파트너가 제3국 업체를 상대로 합작 의사를 타진하는 것 같다”며 “사업 자체가 좌초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화는 재판 과정에서 김 회장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의 추진 사실을 밝혔다가 또다른 고초를 겪기도 했다. 상대 기업이 비밀준수 의무 조항을 위반했다고 강력히 항의해 왔다는 것이다.

 한화건설도 사우디 아라비아에 석유화학 공장 건설 계약을 앞뒀지만 역시 최고위층 선의 협상이 이뤄지지 못해 난관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이 밖에도 아프리카 북부 알제리의 수도 알제 인근 부이난 지역의 신도시 건설 사업에 참여할 방침이지만 구체적 투자 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기업 오너 만이 내릴 수 있는 전략적 판단이나 해외 투자, 인수 합병 건 등이 너무 오래 미뤄지면 그룹의 중장기 성장 잠재력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