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사회학자, ‘명예의 기업’ 일군 일등공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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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통신회사인 KT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윤정로(52·사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KT 경영의 파수꾼이다. KT가 지난달 21일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로부터 6년 연속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돼 국내 최초로 ‘명예의 기업’ 타이틀을 거머쥐자 남중수 사장을 비롯한 KT 경영진은 그 공을 윤 의장에 돌렸다. 2004년부터 KT 사외이사를 맡아오다 지난해 3월 이사회 의장에 오른 그가 KT경영을 제대로 살펴 KT가 상식에 어긋나 판단을 못하도록 도와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40㎏ 대의 몸무게에 가냘픈 목소리를 지닌 그녀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전형이다. 경기여고·서울대(사회학과)를 나온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딴 그녀는 “당신이 여성만 아니었더라면 더 큰 일을 했을텐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단다. 실제 그녀는 2000~2004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을 지낸데 이어 현재 정부정책평가위원회 위원, 산업자원부 신업기술발전심의회 위원, 한국정보사회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과학과 사회학을 접목시켜 ‘과학기술 사회학’의 분야를 개척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녀는 사외이사를 맡은 뒤 남 사장에게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업이 되려면 단 한 명의 고객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사회 현상이 된 정보기술’에 대한 회사 측의 책임을 강조해왔단다. 그녀는 이사회 의장 취임 일성으로 경영진에 이사회 안건의 내용을 사전에 이사진에 배포할 것을 요구했다. 이사회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사외이사들이 꼼꼼히 안건을 챙겨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녀는 기업 최고 경영자(CEO)를 대통령으로, 이사회 의장을 국회의장으로 비유한다. 이사회 의장은 경영의 감시자이자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윤 의장은 “이사회가 열리면 사내·외 이사 간 갑론을박이 벌어지곤 하지만 결론없이 회의를 끝낸 적은 없다”며 “이사회가 경영에 뒷다리를 잡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로서 경영진과 공동 책임을 진다는 취지에서 지난해부터 활동비(월 400만원)로 KT 주식을 사오고 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이사회를 이끌기에 어려운 점이 없느냐는 질문에 “나는 KT 이사회나 어디서나 상대방(남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는다. 내가 틀린 부분은 자존심 세우지 않고 흔쾌히 받아 들이니 상대방이 거부감을 덜 느끼는 것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학과 교수가 경제학 공부를 하느라 뒤늦게 고생은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인 남편(박창규)과 함께 대전에서 생활한다. 외동딸은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금융회사에 취직했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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