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폭행' 김 회장에 실형 선고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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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김철환 판사는 2일 아들을 때린 유흥업소 종업원들을 보복폭행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집단폭행.상해죄를 적용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김 회장)은 사적인 보복을 위해 대기업 회장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회사 조직을 범행에 적극 이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의 수단.방법.내용에 있어 법질서 위반의 정도가 크고 대단히 폭력적이며 위험성도 높다"고 덧붙였다.

김 판사는 "아들 폭행의 가해자에게 피해 변상을 요구하거나 형사고소를 하는 기본 상식과 법치주의를 따르지 않고 사적(私的)으로 보복한 것은 사안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들을 모아 청계산으로 이동한 과정을 보면 폭행이 상당히 조직적이며, 야간에 인적 드문 공사장에서 무방비 상태였던 피해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집단 폭행을 가했다는 점에서 우발적인 단순 폭행사건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법 경시 태도' 영향=김 판사는 실형 판결의 배경으로 "범행 후 진술 태도에 나타난 피고인의 법을 경시하는 태도를 고려할 때 책임에 상응하는 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판결문에 직접 명시하진 않았지만 앞선 공판에서 "아구를 몇 번 돌렸다" "귀싸대기를 쳤다" "검사님, 술집 안 가봤느냐" "그런 걸로 시간 끌고 싶지 않다"며 고압적이고 후회하지 않는 듯한 부절적한 태도가 실형선고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김 회장이 진술을 자주 바꾸고, 법정에서 턱을 괴고 검사 신문에 임한 것도 '법 경시'로 비쳐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김 회장은 사건 직후엔 "청계산에 간 적도 없다"고 부인하다 영장실질심사 때 처음으로 혐의를 시인했다. 쇠파이프 사용 혐의에 대해서도 줄곧 부인하다 첫 재판에서 "거짓말을 하는 (가짜 가해자) 조씨에게 겁을 주려고 머리통을 한 번 때렸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곧바로 "겁만 주고 때리지 않았다"고 번복하기도 했다.

선고 전까지만 해도 한화 측은 물론 법원과 검찰 안팎에서도 집행유예로 그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했다.

김 회장이 구속을 전후해 범행 대부분을 시인했고, 피해자와 합의가 된 데다 피해자 측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검찰의 구형도 징역 2년에 그쳤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 회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청계산 폭행현장에서 쇠파이프로 조모(33)씨의 등을 한 차례 때리고 피해자들을 전기충격기로 위협한 것을 포함해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김 회장 측 우의형 변호사는 "재판부가 우발적인 폭행사건의 실체를 잘못 판단했다"며 "김 회장과 상의해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함께 기소된 진현태 한화그룹 경호과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권투선수 출신 건설업자 장모씨에겐 징역 6월에 집유 2년, 장씨의 후배 윤모씨와 한화 협력업체 대표 김모씨에게는 각각 벌금 600만원과 500만원을 선고했다.

◆"법보다 주먹 인식 사라져야"=김 판사는 판결 직후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잘못된 인식은 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김 회장의 사회적 지위와 이 사건에 쏠린 관심 사이에 밤잠을 설치며 선고를 고심했다고 한다. 언론 접촉을 피하면서도 재판 관련 언론 보도를 꼼꼼히 읽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실형과 집행유예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겠지만 법정에서 크게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은 김 회장의 모습이 실형 선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북 김천고와 한양대를 졸업한 김 판사는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법원 내부에서 조용하고 원칙에 충실한 판사로 알려져 있다.

정효식.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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