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대표인지… 정 회장인지…/박준영 뉴욕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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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키 위해 미국을 방문중인 정주영국민당대표의 행동을 보면 그가 정치조직인 국민당대표인지,경제조직인 현대회장인지 분간키 어렵다.
공식적으론 국민당대표로 활동하면서 사적으론 여전히 회장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가 미국을 방문한 목적이나 많은 국회의원들을 수행하도록 하고 자신의 후원자들을 만나 그동안 지지와 노고를 위로하는 것이나 워싱턴에서 미 대통령취임식에 참석하는 것 등은 분명 정치인으로,그리고 국민당대표로서의 행동이다.
그러나 뉴욕에 도착해서부터 그외의 다른 행동은 여전히 현대회장으로서의 그것이다.
현대 미주지사는 정 대표가 우여곡절끝에 방미한다는 통고를 미국현지 시간으로 새벽 1시에 통보받고 호텔예약에서부터 골프장예약,리무진 임대,워싱턴에서의 일정까지를 급히 마련하느라 지사장을 비롯,전직원들이 밤잠을 설쳤다.
정 대표의 미 대통령취임식 참석이 갑작스런 것이라 격에 맞는 자리를 확보하는 것은 특별히 워싱턴에 파견된 현대팀이 골치를 앓고 있는 일 가운데 하나다. 그런가 하면 현대직원들은 정 대표 일행이 골프를 치거나 저녁을 먹거나,혹은 술자리를 가져도 뒷바라지와 만약의 일정변경에 대비해 추위에도 불구하고 그 주위를 삼엄히(?) 지키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직원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기념일(18일 월요일) 3일간의 연휴에도 불구하고 비상근무를 하고 있고,이같은 상황은 그가 머물 1주일동안 계속된다. 가뜩이나 현대와의 관계때문에 선거가 끝난후까지도 곤욕을 치르고 있는 정 대표가 정치여행에서 현대지사를 동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아직도 정치인과 기업인 사이에서 위치의 혼란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같아 안타깝다.
보이는 곳에선 당대표,안보이는 곳에선 회장으로서 두 얼굴을 갖는 정 대표와 국민당사람들의 이같은 분별력 결여가 대통령선거패배는 물론 그후까지 국민당과 정 대표,그리고 현대를 괴롭히는 여러요인을 제공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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