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출판|가볍고 쉬운 책으로 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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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해 출판계에 불어닥친 극심한 불황으로 수많은 출판사들이 소리 없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출판 종 수나 출판 부수를 살펴보면 특이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종 수나 부수 모두 91년에 비해 소폭이나마 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대다수 출판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출판시장을 독점한 출판사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문화로서만 자족할 것이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출판계에서 심심지 않게 나오고 있다.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주장에 앞장서고 있는 출판사들은 지난해 불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차지해 왔다. 이러한 출판사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젊은 출판인들을 주축으로 기획·제작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출판계에서 낯설게 여기던 새로운 경영기법을 적극 도입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책이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를 반드시 무겁고 어렵게 전달해야 한다는 관행을 과감히 뿌리치고 쉽고 간편하게 전달하고 있어 독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인 김영사를 보자. 지난 76년 설립돼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김영사가 오늘날 단행본 매출액 2위 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출판인인 박은주씨를 대표로 영입하고서부터.
85년부터 매년 3∼5권의 베스트셀러를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1백26만 부)『닥터스』(80만 부)『쥬라기공원』(30만 부)『시간의 모래밭』(30만 부)등 대형 베스트셀러들은 일일이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김영사는 기존의 출판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구들이 베스트셀러 제조에 큰 힘이 되고 있다. 해외 출판정보는 미국 프린스 톤에 있는 같은 이름의 협력사에서 제공받고 있어 어느 회사보다 빠르다.
또 교수·언론인·의사 등을 중심으로 한 비상임 편집위원회를 두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수집한다. 어떤 책의 출판이 결정되더라도 곧 출판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22명으로 구성된 전직원회의에서 끊임없이 토론을 거쳐 편집방향에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의 기호를 살핀다.
또 다른 예로 도서출판 장원을 들 수 있다. 장원의 전직원 평균나이는 27세로 40세가 넘은 사람이 없다. 장원은『배꼽』(2백40만 부),『억새풀』(1백20만 부),『헬로우 미미』(1백만 부),『서울 돈키호테』(80만 부)등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했다.
현재 장원에는 새로운 책 10여종이 만들어져 창고에 쌓여 있으나 기존의 책들이 너무 잘 팔려 출고를 못하고 있다. 또 원고상태로 보유하고 있는 책만도 1백여 종에 이른다.
장원의 이러한 성공은 우선 젊은 직원들이 젊은 층의 수요를 잘 파악해 감각에 맞는 책을 만드는데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어려운 철학이야기를『배꼽』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제목으로 시장에 내놓은 것만 봐도 이들의 젊은 감각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장원은 기획회사와 광고회사를 협력사로 두고 있는데 이들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김영사·장원 이외에도 젊은 출판인들이 새로운 출판분위기를 연출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이 찬사만 받는 것은 아니다. 책을 너무 가볍게 만든다는 비난도 있다. 소위「좋은 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김영사 박 대표는『갈수록 독서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무겁고 어려운 책만이 좋은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관념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판계도 이제 비디오세대의 사회출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김상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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