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공습 정당성 논란/일부서 “강대국 힘의 논리” 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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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승인없이 유엔결의 확대해석”
미국·영국·프랑스 등 3개국 연합군의 대이라크 공습은 국제법을 임의로 확대 해석한 강대국의 힘의 논리라는 우려와 함께 국제법적 근거가 논란이 되고 있다.
아직 공습의 법적 근거에 반발하고 있는 나라는 피해자인 이라크밖에 없어 일단 국제사회가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에 대한 응징을 위해서는 국제법과 유엔 결의안 적용에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유엔의 승인없이 미국 등 연합국이 독자적 결정을 통해 결행한 이번 공습이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3세계를 중심으로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91년 걸프전 당시에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15개 이사국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유엔헌장 위반 행위로 규정,다국적군이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줬다.
당시의 공격은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육·해·공군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유엔헌장 제7장을 원용한 것.
미국 등은 이번 공격에서 이라크가 미·영·불·러시아 4개국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을 위반했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삼고 있다. 이 비행금지구역은 미국 등 연합국들이 시아파 회교도에 대한 이라크 정부의 탄압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지난해 8월 북위32도 이남지역에 이라크 항공기의 비행을 금지한다고 선포한 곳이다.
미국 등은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면서 「국제법상의 인도주의적 필요성」과 이라크 국민에 대한 탄압금지를 요구한 「안보리 결의안 688호」를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유엔은 지금까지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한 공식적인 승인을 내린 적이 없다.
이는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인도주의란 명목으로 무력을 사용할 경우 선례가 될 수 있다며 비토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설정 자체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합국측이 국제법과 유엔결의안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대이라크 공습을 감행한 것은 안보리의 동의나 승인을 얻지않은채 임의로 국제법을 확대 해석한 「범법행위」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라크는 연합국의 공격이 있은뒤 안보리가 요구한 쿠웨이트로부터의 철수와 유엔 비행기의 이라크내 착륙 등은 허용하겠다고 밝힌 반면 미국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에 대해서는 「위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북부 쿠르드족과 남부 시아파 회교도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은 유엔이 아닌 미국 등이 자의로 설정한 것으로 주권침해에 해당하며 당연히 영공에 대한 제공권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유엔결의안과 연합국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다.
안보리도 8일과 11일의 성명을 통해 이라크가 정전협정을 두가지 측면에서 위배하고 있다고만 경고했다.
즉 이라크는 쿠웨이트 국경을 침범해 무기 등 장비를 탈취했으며 유엔 항공기의 자국내 착륙을 방해했다고 밝혔으나 비행금지구역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그러나 연합군은 13일 대이라크 공습의 명분으로 안보리가 지적한 두가지 위반사항 대신 비행금지구역 문제를 들고 나왔다.
말린 피츠워터백악관대변인은 비행금지구역에 초점을 맞춰 이 지역내 배치된 이라크의 대공미사일 철수와 전폭기의 비행중지를 요구하며 응하지 않을 경우 공격하겠다는 지난주 미국·프랑스·영국·러시아 등 4개국이 보낸 최후통첩만을 상기시켰다.
이라크 미사일과 전폭기들이 연합군의 정찰비행을 위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제3세계 국가들은 이에 대해 미국이 유엔결의안을 확대 해석하고 비행금지구역 문제나 대이라크 공습에 대한 법적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국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은 이번 「선례」에 자신들이 해당되지 않기만을 바라야만 할지 모르게 된 셈이다.<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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