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침공」성급한 예단보도/윤재석 국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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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구촌 저편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들이 우리들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흥미거리가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걸프전같은 전쟁의 경우 주요 에너지원인 원유확보와 중동지역 진출 건설업체 및 근로자들의 안위와 관련,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건의 내막을 성급한 판단으로 유추해 국제뉴스를 과대 포장하는 것은 오히려 폐해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10일 이라크­쿠웨이트 접경지대에서 발생한 이라크 노무자들의 「쿠웨이트침입」은 국제뉴스의 균형보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준 사건이다.
1보내용은 이라크군 2백여명이 10일 새벽 쿠웨이트접경지대에 들어가 지대지미사일을 포함한 무기들을 탈취해갔다는 주쿠웨이트 유엔대변인의 발언을 영 BBC방송이 관영 KUNA통신을 인용,보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뒤따라 들어온 외신은 상당히 묘한 내용을 품고 있었다.
첨예화한 대치상태에서 발생한 국경침범­무기 탈취사건이 단 한차례의 총격과 인명피해도 없었는데다 미 국무부의 논평도 『알고 있다』는 정도였다. 재도발때는 사전경고없이 응징하겠다던 미 국무부가 이처럼 한가로운 논평을 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나 국내 신문·방송들은 이 사건을 머리기사 또는 두번째 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어떤 언론매체는 이라크의 지난 주말 유엔 항공기 착륙금지조치를 놓고 11일(현지시간) 소집되는 유엔안보리가 마치 이 사건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 소집되는 것처럼 과장하기도 했다. 오후에 타전된 유엔본부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쿠웨이트국경지대로 들어간 것은 군인이 아닌 이라크 노무자들로 이들은 지난 91년 걸프전때 남겨두고간 물탱크·컨테이너 등 각종 장비를 지난해부터 회수하는 가운데 실크웜 지대지미사일 4기도 들고 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놓고 미국의 유수언론들은 사실만을 간략히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지가 1면 2단으로,뉴욕 타임스지는 간지에 1단으로 취급했다. 물론 이들의 보도태도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와 대치하고 있는 전쟁당사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보도자세가 내포하고 있는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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