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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중국 회귀 10주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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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04면

홍콩의 민주파 인사 100여 명이 30일 (홍콩의) 민주는 (중국) 중앙정부가 은혜를 베풀어 하사한 것이 아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홍콩 회귀 10주년 축하 행사가 열리고 있는 홍콩컨벤션센터에 접근하려다 경찰과 충돌했다. [홍콩 AP=연합뉴스]

‘홍콩 사망’(The Death of Hongkong, 香港之死).

'사망 예언' 이겨냈지만 아직 낙관 이르다 #탄탄한 경제지표 뒤엔 대륙 의존도 지나치게 커져

1995년 6월 미국 포브스지의 커버 스토리다. 2년 뒤인 97년 7월 1일 156년의 영국 식민지 생활을 청산하고 중국으로 회귀하는 홍콩의 운명을 포브스지는 죽음으로 묘사했다. 1982년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또한 홍콩의 중국 회귀는 ‘재난’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홍콩 회귀 10주년을 맞은 올해 포브스지와 자매관계인 타임지 스페셜 리포트는 그 내용이 사뭇 다르다. ‘구름 끼었지만 쾌청’(Sunshine with Clouds, 晴天有雲)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도널드 창(曾蔭權) 홍콩특별행정구(HKSAR) 행정장관은 타임지가 홍콩에 80점을 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70점밖에 줄 수 없다고 한다. 타임지가 간과한 빈부 격차와 고령화 등 홍콩의 잠재위기 때문이다. 창은 지난 12년간 포브스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치운 적이 없다. 홍콩에 내려진 사망선고를 한시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일까. 2007년 현재 홍콩은 살아남았다. 그뿐 아니라 세계경제포럼(WEF)으로부터 비즈니스 환경 1위, 금융인력 경쟁력 3위, 관광 경쟁력 6위로 평가받는 등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다.

정말 건재한 것일까. 97년 회귀 당시 사상 초유의 실험인 ‘한 나라 두 체제’(一國兩制, 중국이 주권을 갖고 외교ㆍ국방을 책임지며 나머지 사항은 홍콩이 특별행정구 신분으로 고도자치 실현) 운영과 관련해 크게 세 가지 우려 사항이 제기됐다. 홍콩의 민주가 살아남을까. 홍콩 경제가 계속 번영할까. 홍콩의 중국화는 얼마나 이뤄질까 등.
먼저 홍콩의 민주를 보자. 외관상 10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매년 6ㆍ4 천안문(天安門) 사태 전날 밤 열리는 촛불집회도 여전하다. 2003년 7월 1일엔 홍콩인 50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이 홍콩의 소(小)헌법으로 불리는 기본법 23조를 근거로 ‘홍콩의 국가분열행위 금지와 외국 정치조직 활동 불허’ 내용을 담은 국가안전조례를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기 위해 홍콩인들이 궐기했던 것이다. 대규모 시위는 홍콩의 민주가 살아있다는 증표로 받아들여졌다. 또 중국 당국이 불법으로 규정한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의 집회도 홍콩에선 자유롭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10년 전과 다른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언론의 위축을 들 수 있다. 98년 정론지를 표방해온 ‘구십년대(九十年代)’가 창간 28년 만에 막을 내렸고, 2001년에는 영문 시사지 ‘아시아 위크’가 폐간됐다. 경제적 이유가 컸다. 홍콩 회귀에 따라 중국 정치의 이면을 파헤치는 보도가 매력을 잃은 데다 기업인들이 중국 입장을 감안해 이들 시사지에 광고하기를 기피한 게 원인이었다. 2000년엔 홍콩 제일의 중국뉴스 전문가라는 말을 듣던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지의 윌리 람(林和立)이 회사를 떠났다. 중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써오다 사주인 말레이시아 화교 재벌 로버트 콱(郭鶴年)과 불화를 빚은 게 탈이었다.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은 지난달 6일 “홍콩 정부의 권력은 중앙정부가 준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홍콩의 민주는 중국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의 민주인 것이다.

둘째, 홍콩 경제는 어떨까. 수치로 본 홍콩 경제는 일단 밝다. 회귀 직전인 97년 6월 27일 홍콩의 대표적 주가지수인 항셍지수는 1만5196.79였는데 10년 후인 지난달 27일엔 약 6500포인트 상승한 2만1705.56을 기록했다. 외환보유액도 97년 5월 666억 달러에서 2006년에는 두 배가 넘는 1363억 달러로 치솟았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은 13년 연속 홍콩을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경제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좋아만 할 일은 아니다. 실업률은 10년 전의 두 배에 가까운 4.3%.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년 전에 비해 고작 411달러 올랐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던 한국과 싱가포르ㆍ대만이 같은 기간 각각 6918달러, 4647달러, 1647달러 증가한 데 비하면 상대적 낙후를 엿볼 수 있다. 한 해 홍콩을 찾는 대륙 관광객은 약 1400만 명, 2004년부터 홍콩 제품의 중국 면세 통관 허용 등 홍콩 경제의 회생은 상당 부분 중앙정부에 의존한 결과다.

끝으로 홍콩의 중국화 문제. 홍콩 회귀 10년이 됐지만 홍콩 중문대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1.5%는 자신을 ‘홍콩인’으로 인식해 ‘중국인’으로 답한 18.6%를 넘어섰다. 중국 표준어인 만다린(普通話)이 홍콩에서 괄시받는 상태는 면했지만 대륙에서 온 이는 ‘내지인(內地人)’으로 불린다. 차별의 냄새가 난다. 홍콩인들은 회귀 전 대륙의 위안(元)화보다 가치가 높았던 홍콩달러가 이젠 위안화 가치보다 못한 역전현상을 맞아서는 “적응이 안 된다”며 불쾌감을 드러낸다.
중국 틀 안에서의 민주, 중국에 의존한 경제 회생, 그래도 나는 내지인이 아닌 홍콩인이라는 게 회귀 10년의 홍콩 모습이다. “홍콩은 실질적으로 회귀한 게 아니라 명목상으로만 회귀했다.” 옌쉐퉁(閻學通) 칭화(淸華)대 교수의 분석이다. 절반의 회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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