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인재 과감한 발탁을(성병욱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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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국의 전국시대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뤄가던 때의 일이다. 진시황의 천하통일에는 이사란 재상의 보필의 공이 컸다. 그는 원래 진의 토박이가 아닌 초나라 출신이었다. 출신지에 구애받지 않고 천하의 인재를 모을 진의 인재우대에 끌려 진조정에 사관하고 있었다. 타국인이 권력의 중추에 들어가니 누대의 토박이 중신들의 반발이 컸다.
○천하잡은 진시황 인사
마침 한에서 온 수리기술자가 운하를 팠는데 그 공사가 진의 국력을 소모시켜 동방정벌을 단념케 하기 위한 모략임이 드러났다. 반격의 기회를 잡은 토박이세력은 일제히 타국인 추방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이사가 반론을 폈다. 『태산은 한줌의 흙도 버리지 않기에 능히 그 크기를 이루고,큰강과 바다는 어떤 세류라도 받아들이기에 능히 그 깊이를 담으며,왕자는 대중을 거부하지 않아야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있다. …타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인재를 추방하는건 인재를 타국에 모이게할뿐 아니라 진으로 오는 것을 막는 것으로,이야말로 적에게 군대를 빌려주고 도둑에게 음식을 주는 일이 아닌가.』
결국 시황제는 일단 발표했던 「축객령」을 즉시 철회했다. 이런 현명한 용인철학이 진나라 천하통일의 바탕이 된 것이다.
역사에 보면 천하의 인재를 모아 들일때 그 나라는 흥기했고,인위적인 장벽으로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할 길이 막힐때 그 나라는 침체기에 접어들어 쇠망의 길을 걸었다. 역향이란 구실로 이 지역 저 지역의 인재등용을 가로막았던 조선조후기가 바로 그러했다.
이번 선거결과를 보면 고무적인 여러 진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지역의식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영­호남간의 지역감정에 대해서는 그 연원을 신라의 백제합병,고려태조의 훈요십조,조선의 호남인 등용억제까지 소급하는 주장도 있으나 역시 60년대이후 악화된 것으로 봐야한다. 근대화과정에서 개발과 인재등용측면에서의 호남 소외가 한으로 응축되고 그것이 80년의 광주항쟁진압을 겪으면서 폭발성을 띠게된 것이다. 거기에 정치적 목적에 의한 자극이 가해졌다.
87년 대선때처럼 폭발성을 띠지는 않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동향후보에 대한 투표의 집중도는 더욱 심해졌다. 김영삼후보의 부산·경남지역의 득표율은 각각 55.2%에서 73.3%,50.3%에서 72.3%로 늘었다. 김대중후보의 전남·북지역 득표율은 87.9%에서 92.2%,80.9%에서 89.1%로 각각 늘어났다. 특히 광주유권자의 DJ집중률은 87년에도 93.4%나 되던 것이 이번엔 95.8%로 더욱 심화됐다.
이렇게 높은 투표의 집중도는 상식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으로 호남소외의식의 깊이와 지역감정의 「인격화현상」마저 보게된다. 그토록 일심으로 표를 모아준 후보가 큰 표차이로 낙선한데 대한 호남사람들의 좌절감과 공허감이 얼마나 크겠는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선거후에 들려오는 현지의 반응은 그 공허감이 외부에서 상상하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듯 하다.
○구색 갖추기로는 곤란
이러한 한 큰 지역의 좌절감과 소외의식은 그 지역에는 말할 것도 없고 나라와 국민,그리고 집권자의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87년 대선후에도 이 문제의 심각성과 대책은 숱하게 논의되었다. 그러나 6공정부의 지역감정해소대책은 말만 풍성했을뿐 별로 소득이 없었다. 이제 그 짐은 더 심각한 모습으로 김영삼 차기대통령에게 넘겨졌다.
이 문제를 단시일안에 해결할 묘방은 생각하기 어렵다. 상당한 시일을 두고 꾸준히 호남소외의식의 원인이 된 요소들을 완화,해소하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는 길밖에 없다. 김영삼 차기대통령은 그 방법으로 인사·문화·산업·교육·금융·교통 등의 지역간 불균형 해소책을 내놓았다. 개발의 불균형과 인사의 차별이 호남소외의식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만큼 그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접근방법은 기본적으로 옳다고 본다.
그중에서도 당장 가시화할 수 있는 것이 새정부의 인재충원과정에서다. 내각과 청와대비서실 등 요직에 과감하다할 정도로 호남사람을 기용해 호남인의 기대감과 신뢰감을 불러일으키는게 중요하다. 그동안 차기대통령 주변이나 여권에 들어와 있던 호남사람뿐 아니라 오히려 반대쪽에 있던 인재를 과감히 쓰면 더욱 좋을 것이다. 과거와 같이 지역안배란 차원에서 구색을 갖추는 정도가 아니라 중요한 자리에 의도적으로 호남인재의 발탁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제는 뭔가 달라지는 것 같다는 기대감을 출범초부터 심어줄 필요가 있다.
○지역감정 타파 전기로
능력위주로 해야한다,지역을 너무 의식하면 오히려 지역감정이 조장된다는 등의 반론과 반발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동안의 소외를 고치려면 상당기간 좀 과하다할 정도로 호남을 특별 고려하는 과정은 불가피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기막힌 지역감정을 해소할 전기를 마련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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