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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색을 싣고, 철도는 달려간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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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20면

프랑스 파리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바스티유 역에서 잠깐 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바스티유 감옥에서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기리고 싶어서는 절대 아니었고, 지하철역 벽의 그림과 낙서가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하철 3호선 옥수역을 미술관으로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는 그래서 마음이 끌리는 사건이다. ‘스트라이프: 속도’라는 제목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미술가 고낙범씨는 “누구라도 기다려지는 옥수역이 되기를 바라며 잠깐이라도 내려서 궁금증을 해소하고 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각을 하면 안 되니까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역을 하나쯤 지나칠 수 있다면 출근길도 조금은 짧게 느껴질지 모른다.
‘함께 타는 공공미술: 옥수역’은 ‘서울시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 첫 번째 결과물로 7월 하순에 완성될 예정이다. 빨간색 예쁜 아치 지붕이 있고, 지상에 있어 낮과 밤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고, 한강이 지척인데도, 옥수역은 많은 이에게 피곤한 관문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옥수역 부근에서 20년을 넘게 살아온 설치미술가 양주혜씨는 그런 옥수역이 “지역 주민에게 축제의 장소로 인식되기”를 바라면서 ‘바 코드(Bar Code): 빛의 문’을 기획했다. 옥수역과 이어져 있는 동호대교 교각 여덟 개에 단청의 색채를 입은 바코드 문양을 그려넣어 공간을 정돈하는 동시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이런 소망은 옥수역 내부와 승강장에까지 투영된다. 건축가 지승은씨는 지하철 환승로에 삼각형들의 변주로 이어진 ‘문의 풍경’을 설치한다. 색과 면이 변해가며 생동감 있는 연속선을 이루는 이 문을 지나 플랫폼에 이르면 고낙범씨의 ‘스트라이프: 속도’(사진)가 기다리고 있다. 승강장 벽면에 스트라이프 무늬 타일을 이어붙여 지하철을 기다리는 승객에겐 생기를 주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 승객에겐 속도감을 주는 작품이다. 디자이너 이상진씨의 ‘화분?’은 옥수역 입구의 조형물과 주변 가로등, 환승장 벤치 등에 식물 대신 빛을 키우는 화분을 설치하는 프로젝트. 미래적인 느낌이 나는 6호선이 개통되기 이전, 옥수역은 드라마 촬영장소로 자주 쓰이던 곳이었다. ‘함께 타는 공공미술: 옥수역’은 그 무렵의 팬시한 느낌을 되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삭막한 지하철역을 색과 조형이 물결처럼 흐르는 장소로 바꾸게 될 것이다. ‘서울시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는 옥수역 갤러리가 완공된 이후에도 여러 공공장소를 돌며 프로젝트를 계속할 계획이다. 글 김현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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