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공정해야 「묵은 앙금」풀린다(신명나는 사회: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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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즈음 정부부처 공무원들은 위·아래 할 것없이 다가오는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일손을 잡지 못하는 분위기다. 외적으로 드러난 현상은 정권교체기에 예상되는 그런 모습이지만 좀더 안쪽을 살펴보면 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종전의 경계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새로운 기대감이 크다는 점이다. 많은 공무원들은 새정부 출범과 함께 공무원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기대하고 있으며,이와 관련해 특히 인사정책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할 맛이 나게하는,이를테면 「신명나는 인사정책」의 갈구다.
『안정속 개혁이라는 차기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가 공직사회의 인사에도 적용되기를 기대합니다. 장관만 하더라도 그동안 너무 자주 바뀌었어요. 적당히 인사하고 여론이 나빠지면 갈아버리고. 이번에는 처음부터 엄선해야 합니다.』 6공들어서만 8명의 장관을 모신 내무부의 한 젊은 사무관(32)의 바람.
총무처의 또 다른 30대 사무관은 『거대국가 미국에서도 40대 대통령과 30대장관이 나오는데 우리는 너무 원로급에 연연하는 것 같다. 새시대를 맞아 나라를 싱싱하게 만드는 충격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해 검찰간부 인사후 검찰 내부에서는 「광어와 도다리」뒷얘기가 나돌았다. 우대받은 이른바 TK출신들은 광어,그에는 못미치지만 「제몫은 챙긴」같은 영남권의 PK들은 도다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TK도 PK도 못되는 지역출신들은 「그럼 우리는 잡어냐」는 자조의 항변을 낳았다.
관료조직 중에서도 엘리트조직으로 꼽히는 검찰인사 분위기가 이러할진대 다른 조직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역대 안기부장,경제기획원·외무·내무·재무·상공·법무장관과 육군참모총장·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 등 이른바 권력의 핵심에 해당하는 부처의 장 자리가 특정지역출신에 독점되다시피하고 어느 지역 출신은 배제되어 왔다는 등의 지적은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그런 국정운영에 방향을 좌우할 고위공직자의 인선은 물론 하위공무원·국영기업·금융계 등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넓은 의미에서 공직인사가 명목상 제도와는 별개로 막후에서의 인간관계에 따라 이루어져온 현실이다.
5,6공 금융계 인사를 L·K씨가 좌우해왔다는 등의 공공연한 풍설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도 금융계에서는 믿을 사람이 없다.
『이제 지역편중·정실·낙하산인사의 잘못된 관행이 청산되어야 할 때 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공직사회가 신바람 날 수 없어요. 그렇게되면 새시대의 기대는 곧 환멸로 바뀌고 그것은 혼란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중앙부처 한 이사관(53)의 시각은 기대반 경고반이다.
직업공무원제도를 정착시키고 조직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조직내부의 여론이 인사에 반영될 수 있게 제도를 보완하고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신상필벌이 따라야만 공직사회에 기강과 활력이 되살아날 것이란 제언이다.
과연 어떤 인사로 공직사회가 새바람속에 신명을 내는 계기를 만들어낼까. 첫 과제는 인사를 「전리품」으로 다루는 시각부터 고치는 일일 것 같다. 인사는 만사다. 첫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이덕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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