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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수감 1호 미군 SOFA기준 맞추자니…부랴부랴 '호텔급 감방' 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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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넘겨받긴 넘겨받았는데…."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 따라 30일 처음으로 재판 전 미군 범죄 피의자를 인도받은 교정 당국이 고민에 빠졌다.

내국인 수감자와는 사뭇 다른 '호텔급' 수감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SOFA의 한.미 간 합의의견(13호)에 따르면 미군 범죄 피의자 신병이 한국에 인도될 경우 구금 시설은 최소 2평 넓이에 샤워 설비를 갖춰야 한다. 또 작은 식당을 별도로 마련하고 수용실 테이블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한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따로 식당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지만 미국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요리용 스토브와 냉장고를 마련해 줘야 한다. 카드.놀이기구.운동비품을 포함한 오락기구도 마련해 주고 미군이 제공하는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지난달 28일 경기도 오산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마주오던 차량의 운전자를 숨지게 한 미군 방공포대 소속 온켄(33.사진)병장을 미군 측으로부터 넘겨받은 서울구치소가 난감해 하고 있다.

온켄 병장은 이날 오후 1시쯤 미군 헌병차량을 타고 도착, 구치소 측으로부터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친 뒤 수용자복으로 갈아입고 외국인 사동에 입감됐다. 살인.성폭행.음주운전 사망사고 등 12가지 중죄의 경우 한국에서 구금.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2001년 개정된 SOFA에 따라 처음으로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군을 국내 구치소에 수감한 것이다.

미군 측은 지난해 의정부 여중생 장갑차 압사 사건으로 촉발된 반미 감정이 이번에도 되살아날까 우려해 온켄 병장의 신병을 전격적으로 인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온켄 병장이 재판을 받아가며 일시적으로 유치될 서울구치소는 SOFA의 기준을 완전히 충족시키는 시설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미군 구금은 처음 있는 일인 데다 온켄 병장의 인도 결정이 의외로 신속하게 이뤄져 교정 당국의 준비가 미흡한 탓이다.

실제로 서울구치소 외국인 사동은 감방별로 목욕시설이 돼 있지 않아 구금된 피의자들은 사동별로 공동목욕탕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구치소 측은 냉장고.요리용 스토브와 함께 오락기구는 제공할 계획이다. 혹 미군 측이 SOFA의 시설기준 미흡 등을 이유로 반발하면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켄 병장의 형이 확정되면 이미 SOFA 규정에 맞는 호텔급 수감시설을 갖춘 천안교도소 미군 전용 사동으로 이감된다.

법무부 교정국 관계자는 "현재 서울구치소가 갖추고 있는 기본시설은 SOFA가 규정한 수준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라며 "천안교도소는 SOFA의 시설 기준에 맞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수원=정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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