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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보수엔 철퇴, 진보엔 솜방망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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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중상모략
원제: Slander 앤 코울터 지음
이상돈ㆍ최성일 옮김, 브레인북스
398쪽, 1만5000원

“정치가 지저분한 스포츠가 되어가고 있다. 서로 귀를 열어 경청하지 않고 이미 결론을 내린 사람들이 충돌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험한 말이 난무하고 서로 넌더리를 친다.”

미국 보수진영의 대표적인 정치평론가인 지은이는 미국의 현실을 이렇게 통탄한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이 진보주의자들 때문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진보주의자들은 기독교인과 총기, 그리고 이윤추구를 증오한다. 낙태, 인종차별, 동성애 문제에서 자신들과 다른 견해는 모두 이단이다.그들은 종교적 광신자 이상의 확신을 하고 있다.”

‘보수의 디바’로 불리며 보수파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지은이(사진)가 특히 문제 삼는 것은 매체다. 그는 “세상 모든 공공광장은 진보주의자들의 선전장소가 됐다”고 주장한다.방송 앵커들은 공화당과 보수주의자 때리기가 일과다. 할리우드 영화에선 낙태 찬성론자들은 마음씨 좋은 사람으로, 목사는 나치 같은 이미지로, 공화당원은 부유하고 괴팍한 모습으로 그리는 게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 잡았단다.

뭐니뭐니해도 지은이에게 가장 미운 털이 박힌 매체는 자칭 ‘역사를 기록한다’는 뉴욕 타임스다. 기사 검색 결과 이 신문은 어느 시기 ‘극우’를 109개나 사용하면서 ‘극좌’는 18개밖에 쓰지 않았다. 어떤 해에는 ‘기독교 보수주의자’와 ‘종교적 우파’라는 표현을 거의 200번이나 사용했다. 무신론 진보주의’나 ‘무신론 우파’라는 단어는 단 한차례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지은이는 이를 들어 뉴욕 타임스가 객관성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진보주의의 편을 들어 보수주의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종교적 우파’라는 용어는 보수주의자가 광신도나 관용이 없는 사람으로 들리도록 매체가 만들어낸 말일뿐 실체는 전혀 없다고 반박한다. 공화당원과 보수주의자를 ‘미친 사람’으로 몰기 위한 조작이자 중상모략이라는 것이다.

겉으론 점잖은 척하지만 지면엔 막말과 비아냥이 난무한다. 뉴욕 타임스는 1999년 3월 조지 W. 부시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뜻을 밝히자 “부시는 ‘대통령에 출마하려면 알아야 할 것’이라는 제목의 보충수업을 받기 시작했다”고 썼다. 나흘 뒤 정정란에서 “이 문장은 기사에 들어가지 말아야 했다”고 했지만 역사를 기록한다는 신문이 이래도 되는지.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진보적 매체들이 공화당엔 쇠방망이, 민주당엔 솜방망이의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부시의 말실수는 빠짐없이 보도돼 전세계가 그의 지능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과거 클린턴이 “우리가 의지를 강하게 하고 마음을 잃어버린다면(‘잃어버리지 않는다면’이 올바른 표현) 이 나라는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입니다”라고 했던 말실수를 보도한 주류 매체는 드물다.

지은이는 진보주의자들은 상대방을 무조건 ‘멍청이’ ‘바보’라고 부른다고 지적한다. 다른 이의 생각을 중시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진보주의자들은 이를 통해 ‘공화당원과 보수주의자는 증오와 야비함으로 가득 찬 돌대가리’이고 민주당원과 진보주의자는 ‘박애적이고 똑똑하다’는 비논리적인 가설을 퍼뜨리고 있다. 논리가 아닌 당리와 신념에 맞춰 진실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아이러니컬한 점은 그가 진보진영에 퍼붓는 비난을 듣고 있노라면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당파의 이익을 모든 생각과 행동의 최우선에 두는 편협한 생각, 귀는 막고 목청은 높이는 세태에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참으로 역설적이고 반면교사적인 책이다.지은이는 이 책에서 바람을 향해 흙을 던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비난이 아니고 존중이야, 바보야.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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