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비 넘긴 「제2걸프전」/부시­후세인 속뜻은 무엇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세계유일한 초강대국 의지 다시 과시 부시/강권통치·경제난 국민불만 무마 겨냥 후세인
▷미국의 입장◁
미국 등 서방국들이 이라크의 도발에 대해 초강경 대응을 다짐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후세인정권을 무기력한 상태에 묶어두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 해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라크의 주요 군사시설과 산업시설을 대부분 파괴,군사적 무력화전략을 구사했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냉전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미국의 리더십에 도전하는 지역강국을 일벌백계한다는 대외정책상의 필요도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라크의 국력을 구성하는 요소,즉 경제력과 군사력을 계속해 약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미국은 걸프전 종전이후 이라크에 대한 제재조치의 고삐를 한치도 늦추지 않고 있다.
이번 비행금지구역에 대한 이라크의 도발에 대해서도 미국은 초기부터 강경 대응해왔다. 지난해 12월27일 이라크 전투기가 처음 비행금지구역을 침범했을때 미국은 즉시 이를 격추했으며 이후 이라크가 계속해 전투기를 침투시키는 한편 비행금지구역 인근에 지대공미사일을 전진배치하자 영국·프랑스·러시아 등과 협의를 거쳐 최후통첩을 발했다.
미국이 초강경 대응을 한 것은 조지 부시 공화당정부가 빌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당선자에게 정권을 이양한 뒤에도 대외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를 유지토록 하기 위한 정치적 고려라는 분석도 있다.
부시대통령이 지난 6일 웨스트 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서 행한 마지막 공식연설에서 미국이 신고립주의에 빠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강력한 지도력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한 사실은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후세인의 속셈◁
사담 후세인 이라크정부가 서방국들의 최후통첩을 무시하고 한때 맞대결을 선언한 것은 나름대로 국내외 정세를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철저한 정치·군사적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 정권은 지난 91년 2월 걸프전 종전이후 미국주도 다국적군과 유엔에 의해 부과된 항복조건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기회만 있으면 이를 파기,또는 수정하기 위한 도발을 계속해왔다.
비행금지 구역설치,경제제재 등 서방국들의 대이라크 봉쇄가 기본적으로 후세인정권의 붕괴를 노리고 있어 후세인으로선 생존전략상 대응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대외적으로는 서방국들이 가하고 있는 각종 제재가 지나치다는 점을 부각시켜 국제여론을 환기시키고 대내적으로는 전쟁으로 인한 피폐한 경제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라크가 일방적인 패배가 분명한 서방에 대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고 있는 것은 시기적으로,국제법상의 명분상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유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한 것으로 관측된다.
시기적인 측면은 미국이 후세인과 맞대결을 주도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퇴임하고 정권이 공화당보다 고립주의적 색채가 강한 민주당으로 넘어간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빌 클린턴 미 차기대통령은 최근 부시대통령의 대이라크 강경정책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지를 표명한 바 있지만 미 대통령선거에서 미 국내경제문제가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점을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 민주당 새정권은 부시정권보다는 대외문제에 덜 적극적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후세인은 이 점을 노려 클린턴정권 이후에도 끊임없이 도발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후세인은 이미 유엔의 무기사찰단을 포함한 외국항공기의 국내 착륙을 불허한다고 발표하기도 해 이같은 의도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국제법상으로는 이번 분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남부 비행금지구역이 유엔안보리의 승인을 받지 못한 미비점이 지적된다.
서방국들은 이라크 국민들에 대한 후세인 정권의 탄압을 금지하는 유엔안보리 결의안 688호에 근거해 비행금지구역을 설치,유지하고 있으며 이라크에 대한 공격도 이 결의안에 근거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비행금지구역 설치를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다.
지난해 8월 비행금지구역 설치 당시 미국 등은 별도의 유엔안보리 결의를 이끌어내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유엔은 8일 서방국들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이는 유엔의 어떤 결정과도 무관한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피폐한 경제로 고통받는 이라크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울 필요도 큰 요인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라크는 전쟁피해와 전후 경제봉쇄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은 언제라도 폭발할 가능성이 있으며,특히 미국내 정권교체는 이라크 국민들로 하여금 경제봉쇄 해제 등의 기대감을 불러일으켜 후세인정권에 대한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염려가 있다.
후세인의 도발은 어떤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오히려 국민들간에 위기감을 고조시켜 정권기반을 다지는 기회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강영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