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동혁, 모스크바에 태극기 휘날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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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신예 피아니스트 임동혁(23)씨. 그는 과연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볼쇼이 홀’에 태극기를 휘날리게 할 수 있을까.

27일(현지시간) 피아노 부문 결선 진출자 6명 중 맨 먼저 무대에 등장한 그는 지정곡인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제1번과 자유곡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연주했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제2번은 200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지휘 유리 테미르카노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지휘 정명훈)의 내한공연 때도 골랐던 자신있는 레퍼토리.

피아노 부문에는 러시아 출신이 4명, 독일 출신이 1명이 함께 결선에 올랐다. 문제는 지정곡인 러시아 음악의 자존심이기도 한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얼마나 잘 요리하는 데 달려 있다. 러시아 출신이 4명이나 포진해 있는 것을 보면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더구나 한국 출신 심사위원으로는 백건우씨가 유일하게 참가하고 있지만 심사위원 16명 가운데 4명이 러시아 출신이다. 나머지는 미국(게리 그라프만), 이탈리아(세르지오 페르티카롤리), 폴란드(안제이 야진스키), 영국(크리스토퍼 엘튼), 프랑스(프랑수아 조엘 티올리에), 오스트리아(페터 랑), 포르투갈(세케이라 코스타), 독일(클라우스 헬비크), 스페인(호아킨 소리아노) 등 유럽 출신들이다. 심사위원 구성 면에서 약간의 희망을 걸어보는 것은 아시아권에서 백건우씨와 함께 참가한 일본 출신 나카무라 히로코 여사다. 임동혁씨가 2000년 일본 하마마스 국제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할 때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일본 피아노계의 대모’다.

러시아 출신들의 텃세 못지 않게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독일 출신의 다크 호스, 벤야민 모저(26)다. 그는 지난해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2006 영 콘서트 아티스트 유럽 오디션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뮌헨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뮌헨 국립음대와 베를린예술대에서 공부했다. 2004년 베를린에서 열린 아르투르 슈나벨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콩쿠르 경력은 임동혁씨에 비해선 보잘 것이 없다. 나이로 보면 세 살 아래인 임동혁씨가 더 유리하다.

벤야민 모저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자유곡으로 골랐다. 러시아 출신들은 프로코피예프 제2번과 제3번, 라흐마니노프 제3번을 골랐다.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잔뼈가 굵은 임동혁씨도 차이콥스키 협주곡은 물론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에서도 러시아 출신 못지 않는 뛰어난 해석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임동혁씨는 콩쿠르 경력이나 교육 배경을 볼 때 3위권 진입은 무난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74년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정명훈씨의 기록을 깰 수 있을 것인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일단 결선에만 진출하면 메달과 상금이 수여된다. 4위부터 6위까지는 금ㆍ은ㆍ동이 아닌 그냥 메달이고 각각 미화 7000달러, 5000달러, 4000달러의 상금을 준다. 1위(금메달)은 1만 5000달러(약 1400만원), 2위(은메달)은 1만 달러(약 900만원), 3위(동메달)는 7000달러(약 600만원)의 상금을 받게 된다.

바이올린 부문에서는 윤소영(23), 신현수(20)씨가 6명의 결선 진출자에 합류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김남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의 제자들이다.
나머지는 중국, 일본, 독일, 러시아 출신이 각각 1명씩 진출했다.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블라디미르 스피바고프가 김남윤 교수와 막역한 사이인데다 윤씨와 신씨 모두 국제 콩쿠르 경험도 많아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바이올린 부문의 심사위원단은 러시아 출신이 4명, 미국 출신이 2명, 스위스, 독일, 중국, 일본, 이탈리아 출신이 각 1명씩이다.
한편 첼로와 성악 부문의 결선에는 단 한 명의 한국계도 진출하지 못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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