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상사부부 이웃 구하고 “살신성인”/악몽같은 우암아파트 붕괴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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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숙직하다 혼자 화 모면한 가장 “통곡”/구사일생 산모 “기적적 조산아 분만”/먼저 대피 아버지 전화로 자녀 구출
○…이날 불길속을 뛰어다니며 이웃 주민 10여명을 깨워 대피시킨후 자신은 숨진 현역 공군상사와 그 부인의 「살신성인」 미담이 주민들에 의해 전해져 시민들을 울리기도.
주민들에 따르면 이 아파트 나동 501호에 살던 황종훈상사(36·공군 3579부대 의무대)는 이날 오전 1시30분쯤 부인 정양임씨(33)와 아들 준호군(8)·딸 지연양(5)을 일단 대피시킨후 아파트가 무너지기 10분즘쯤 안으로 들어가 쇠파이프로 잠든 이웃집 문을 두드려 10여명을 대피시켰다는 것.
그러나 황 상사는 뒤쫓아 들어온 부인 정씨와 함께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사고현장 수습을 위한 건물 철거가 진행되면서 일가족 참사가 잇따라 밝혀져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청주의료원의 경우 배정만씨(42)와 아들 부윤씨(23) 등 부자가 변을 당한 것을 비롯해 서진태씨(48)와 서씨의 부인 오태순씨(41)·아들 성옥(26)·헌수(23)씨가,고동숙씨(32·여)와 고씨의 아들 박종근군(3) 등 일가족이 참변.
또 충북대병원에 안치된 2구의 시체는 이재화씨(31·여)와 아들 윤진섭군(3) 모자이며 4구의 시체가 안치된 청주병원에서도 정경미씨(30·여)와 정씨의 아들 장현태군(생후 2개월)·정씨의 시누이 장순란씨(28) 등 일가족 3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
○…한편 가족 3명을 잃은 박학규씨(35)는 전날 회사에서 숙직근무를 하는 바람에 화를 모면.
사고소식을 듣고 현장에 달려온 박씨는 처 고동숙씨(32)와 영남양(5)·종근군(3) 남매 등 가족들의 안부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다 이날 오후 끝내 숨진채로 발견되자 통곡.
또 가동 202호에 사는 윤병묵씨(35)도 전날 개인적인 볼일로 상경해 화를 면했으나 부인 이재화씨(31)·장녀 보람(9)·장남 진섭(3) 남매와 조카 이승자양(10) 등 일가족을 모두 잃고 망연자실.
○…발화직후인 7일 오전 1시30분쯤 아파트 밖으로 나왔던 장수진씨(52·목수·다동 505호) 부부는 유독가스와 불길이 강해져 아파트에 다시 들어갈 수 없게된 뒤에야 두남매를 남겨두고 온 것을 알고 집에 전화를 걸어 두남매를 불러내 구출.
장씨로부터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깨어난 아들 영주씨(24·중앙대 4)와 딸 영숙씨(21·회사원) 남매는 이미 4층까지 퍼져온 유독가스를 피하기 위해 가로·세로 1m크기의 김장용 투명 비닐을 얼굴에 덮어 쓴채 1층 출입구까지 연결된 난간을 잡고 탈출에 성공.
○…7일 오전 1시35분쯤 옥상으로 대피한 주민들의 대부분이 옥상 난간에 기대어 고가사다리의 구출을 기다리던중 아파트가 갑자기 무너지면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져 숨졌지만 권오덕씨(51·노동·다동 506호) 일가족 5명은 붕괴 순간 옥상안쪽으로 몸을 날려 구사일생. 권씨 등은 『아파트 밖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라」고 외치는 말만 듣고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대피했다가 변을 당할뻔 했다』며 옥상대피를 외친 사람들을 성토하기도.
○…지난해 9월께 이 아파트 2층에 있던 에어로빅교습소에서 불이 났을때 소방차가 신속히 진화한 경우처럼 이번에도 곧 진화될 것으로 보고 창 밖으로 소방대를 구경하던 장병헌씨(34·회사원·다동 307호) 일가족 6명은 뒤늦게 탈출하는 소동.
○…이재민을 위해 청주농고 기숙사에 마련된 임시수용소에는 31가구 1백28명의 이재민이 수용돼 첫밤을 지냈다.
이 학교 2층짜리 기숙사의 온돌방 30여개에 수용된 이재민들은 청주시청과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청주시내 각 여성단체 등에서 마련해준 이불·식량·난방기구·취사도구 등 구호품으로 수용소 생활을 시작. 청주농고측은 이재민들의 숙식대책이 수립될때까지 이 기숙사를 이재민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며 사고대책본부는 1차로 가구당 20㎏의 쌀과 고추장·김치 등 부식 및 각종 생활용품 등을 지급.
○…사망자가 속출하는 악몽의 와중에서 새 생명이 탄생해 눈길. 우암상가 아파트 다동 504호에 살고 있던 김향미씨(26·주부)는 7일 오전 1시30분쯤 연기가 방에 가득 차자 남편 곽근식씨(31·직업군인)와 함께 복도끝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일단 대피했으나 오전 2시7분쯤 순식간에 건물이 무너지면서 콘크리트 더미에 덮여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 돌을 지낸 첫째 아들을 가슴에 안고 무사히 살아남은 남편 곽씨와 경찰에 구조된 김씨는 인근 청주병원(원장 조임호·58)에서 가벼운 타박상 치료만 받고 퇴원을 서두르다 이날 낮 12시쯤 갑자기 배에 심한 통증이 와 분만실로 옮겨져 제왕절개수술끝에 2.2㎏의 팔삭둥이 딸을 분만. 김씨의 원래 분만예정일은 50일후인 다음달 27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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