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암 투병 홍콩 스타 메이옌팡 40세로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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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오늘의 아름다운 풍경은 다시 올 수 없으니 나를 위해 그리워하거나 애통해 하지 말라(今天美景不能再 不要爲我添愁哀)."

'중화권의 톱 스타'인 메이옌팡(梅艶芳.영문 이름 애니타)이 불러 인기를 끌었던 '붉은 의혹(赤的 疑惑)'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그는 30일 새벽 마흔살의 젊은 나이로 이 노래 가사처럼 생을 마감했다.

그는 1982년 가요계에 입문한 뒤 '물처럼 흐르는 세월(似水流年)''석양의 노래(夕陽之歌)''반생연(半生緣)' 등 27개의 히트곡을 내놓았다. 梅는 '연분(緣分.1984)' '동방삼협(東方三俠.1993)' 등의 영화와 TV드라마에 출연해 연예계를 종횡으로 누볐다. 梅는 지난 9월 자궁경부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공개한 뒤 "병마와 싸워 이기겠다"고 다짐했었지만 끝내 팬들을 두고 떠났다. 이후 梅는 광고 출연과 함께 장이머우(張藝謀)감독이 찍는 '십면매복(十面埋伏)'에 출연하는 등 마지막까지 불꽃을 태웠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돼 이달 중순부터 요양에만 전념했다.

그의 임종을 지켜본 청룽(成龍)은 "아메이(阿梅.梅의 애칭)는 절친한 친구들과 한명씩 차례차례 작별하고 떠났다"며 "자기 이름을 부르지도, 울지도 말라는 게 마지막 소망이었다"고 전했다.

이날 병원에는 류더화(柳德華).양쯔충(楊紫瓊) 등 50여명의 스타들이 몰려들었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그의 임종 순간에는 네명의 라마교 승려가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일찍이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던 그는 다섯살 때부터 노래하기 시작해 열한살에 무대에 섰다. 어머니는 경극(京劇)의 전설적인 배우였던 메이란팡(梅蘭芳)을 닮으라고 이름까지 비슷하게 지어주었다.

그가 가요계에 정식으로 데뷔한 것은 '신인가수 선발대회'에서 1등을 했던 열아홉살 때. '최우수 여가수''최우수 여우주연상'을 휩쓸어 스스로 "후배들을 위해 더 이상 상을 받지 않겠다"(90년)고 말할 만큼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요염함과 깜찍함, 때로는 악녀(惡女)의 이미지까지 갖춰 '변신의 여왕(百變天后)'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인기 절정기에 "스물여섯살까지만 활동하고 평범한 사람과 결혼해 조용히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91년엔 '은퇴 고별 공연'까지 했으나 1년 뒤 영화 출연을 통해 연예계에 다시 뛰어들었다.

그는 지난달 중순 "죽기 전에 면사포를 한번 써보고 싶다"며 '스타 음악회'에 웨딩 드레스를 입고 출연하는 '깜짝 쇼'를 벌이면서 활짝 웃었다. 이 웃음이 팬들에게 보낸 마지막 웃음이었다. 그의 곁을 스쳐갔던 남자는 많았지만 결혼까지 골인하지 못했던 아픔을 그는 이런 식으로 삭였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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