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김 인수인계…「불씨」묻고 순항/정부이양 둘러싼 갈등 있나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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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책사업·쌀개방 등 서로 부담 적게 조율/노 “최대한 지원” 김 “퇴임후 보장”거듭화답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차기대통령간의 정권인계·인수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양측 측근들은 『정권이 무난하게 이양되는 첫번째 선례가 될 것 같다』고 다함께 얘기하고 있다. 현승종국무총리와 내각은 대통령직 인수위(위원장 정원식)에 대해 거의 제한없는 협조를 하고 있고 인수위도 현 정부의 감정을 다치지 않으려 신경쓰고 있다.
고속전철차종 등 국책사업 결정권 행사문제로 실무자 사이에 약간의 갈등기류가 조성되자 노 대통령은 모든 결정은 차기정부에 넘겨 불씨를 아예 묻어버렸다.
○…양측 참모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 노 대통령과 김 차기대통령간에는 골칫거리나 장애물,감정의 앙금 따위가 별로 없다』고 말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내각에 『김 차기 대통령의 정권인수 업무를 최대한 도우라』고 지시해놓았다. 특히 인수위가 알고자 하는 정보는 아낌없이 제공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선거기간중 김 후보가 「물정부」를 세게 비판해 한때 노 대통령이 적잖이 섭섭해 했지만 당선 이후 김 차기대통령이 먼저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다』고 해 무마됐다는 것이다.
김 차기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기회있을 때마다 노 대통령의 퇴임후를 보장한다는 뜻을 명확히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이 물러난후 전후임간에 원수가 되거나 불행한 일을 당하는 나쁜 전통을 청산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김 차기대통령측은 고속전철 등 국책사업 추진문제에 대해서도 『현정부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다』고 말하고 있고 노 대통령측도 『그런 일은 차기정부의 몫』이라고 화답했다.
노 대통령은 『올해의 정부부처 업무보고는 차기대통령이 받아야 한다』며 아예 일정을 만들지도 않고있다. 노 대통령은 기회있을 때마다 『김 차기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크다』고 면전에서 치켜세우고 있다.
청와대 고위참모는 7일 『일부에서 거론하는 국책사업 문제를 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중에 꼭 매듭지어야 하는 절박한 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자신과 김 차기대통령 모두에게 가장 부담이 적은 방법을 택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생각·방침에 따라 대형 국책사업의 결정권이나 중요현안 선택은 대부분 차기정부로 이양될 것으로 보인다.
국책사업은 ▲고속전철차량 선정 ▲LNG 수송선 5,6호 발주 ▲제2이동통신 사업자선정 등이고 현안은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 따른 쌀시장 개방여부 ▲핵폐기물처리장 설치 등이다.
이중 제2이동통신은 지난해 파동을 거치면서 차기정부로 교통정리됐다. LNG수송선 발주도 시기가 신정부 취임 이후가 될 것 같다.
다만 고속전철 차량선정에 대해 「경부고속철도 건설공단」이 지난 5일 새정부 출범전에 3개국(독·일·불) 입찰을 거쳐 협상대상국을 확정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협상」의 시작이지 공급자 확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협상대상이 정해지면 자연히 최종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므로 현­신정부간 문제가 얽히게 되는 것이다.
현정부에서 이를 정하더라도 이것이 이권과 연결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차기대통령 진영도 파악하고 있다.
오히려 김 차기대통령 주변에서는 낙찰에 떨어진 국가들에 대한 새정부의 정치적 부담을 덜기위해 차라리 현정부가 일을 끝내놓고 나가주었으면 하는 의견까지 나오기도 했다.
노 대통령 정부도 이 점을 고려했으나 이동통신 때처럼 불필요한 오해나 잡음을 살 필요가 없어 신정부로 넘긴다는 쪽으로 판단을 좁혀가고 있다.
핵폐기물 처리장 설치나 쌀시장 개방여부 등은 지역주민·농민의 반대를 조정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므로 자연스럽게 차기정부가 맡게될듯 하다.
김 차기대통령 측으로서는 엄청난 부담이 따르는 쌀개방 문제를 현정부가 「희생적으로」풀어놓고 가주기를 바라는 눈치도 있다.
김 차기대통령은 국민에게 「고통의 분담」을 요구하겠다고 누차 공언한바 있어 핵폐기물 처리장 같은 사안은 취임후 차근차근 지역주민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김진·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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