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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시시각각

가난한 인재 욕보이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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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은 1954년 월반으로 고교를 남보다 먼저 졸업했다. 뉴욕 시립대학과 뉴욕대학 두 군데에 합격했지만 ‘간단한 계산’으로 전자를 택했다. 사립인 뉴욕대의 연간 학비는 750달러, 시립대는 단돈 10달러였기 때문이다. 뉴욕 시립대는 파월 같은 노동자 계층 자녀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부여할 목적으로 19세기에 설립됐다. 파월은 자서전에서 “나는 뉴욕 시립대학이 세워질 때 대상으로 삼았던 학생들, 즉 슬럼가의 가난한 이민 가정의 자녀들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고 회고했다.

뉴욕 시립대학은 파월이 입학하기 전에 이미 8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조너스 소크(척추 소아마비 백신 발견자), 업턴 싱클레어(소설가), 로버트 와그너(상원의원), 에이브 로젠탈(뉴욕 타임스 편집인) 등 쟁쟁한 인재를 배출한 ‘빈자(貧者)의 명문’이었다. 파월의 표현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의 하버드와 프린스턴’ 역할을 맡은 대학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하버드대’

사흘 전 청와대 토론회에서 152개 대학 총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면박당했대서 교수사회가 끓고 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대입 ‘기회균등할당 전형’ 정책을 보면 앞으로 자존심 상하고 욕 볼 사람은 훨씬 늘어난다. 바로 가난하지만 똑똑한 전국의 고교생들이다.

교육부는 2009학년도부터 대입 정원 58만 명의 11%인 6만4000명(정원 외)을 기회균등할당제로 뽑겠다고 밝혔다. 현 농어촌ㆍ전문계(실업계) 고교 출신 특별 전형에 기초생활수급자ㆍ차상위 계층 등 가난한 학생들도 포함시킨다는 얘기다. 학력에 따른 계층의 대물림을 완화하고 교육이 계층 이동의 수단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란다. 최소한의 수학능력 기준에 대해서는 ‘당장의 시험 성적보다는 잠재 능력ㆍ소질 등에 초점을 두어 선발’하라며 ‘일반전형 최저 학력 기준보다 1~2등급 낮은 수준’이라고 제시했다.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 도대체 잠재 능력과 소질을 누가 어떻게 평가하는가. 부모가 중산층 월급쟁이인 ‘죄’로 열심히 공부하고도 불합격한다면 역차별 아니냐는 질문이 당장 나온다.

학업 성취도의 요인은 여러 가지다. 가정환경과 재산, 부모의 교육열, 지능, 성실성, 건강 등일 것이다. 크게 보면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이다. 노 대통령과 교육부는 외적 요인을 중시한 일종의 환경결정주의를 택했다고 나는 본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출발점처럼 역사적으로도 두 시각은 어느 한쪽만 옳다 그르다 하기 어렵다. 농어촌ㆍ전문계 특별 전형이나 지역균형선발은 외적 요인 탓에 더 공부할 기회를 놓칠 뻔한 가난한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기회균등 정책은 너무 한쪽으로 나갔다.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을 지나치게 확대했기 때문이다.

자기 힘으로 ‘등용문’ 통과해야

고교 교사들에 따르면 서울의 상위권 사립 S대에 합격하려면 인문계 학생은 국어ㆍ영어ㆍ수학 수능시험에서 적어도 1ㆍ1ㆍ2등급을 따야 한다. 그러나 특별 전형을 하는 전문계는 3ㆍ3ㆍ5등급이면 된다. 한 등급 차이가 얼마나 큰지 수험생이나 학부모는 안다. 그래서 입학하고도 기본실력이 모자라 포기하는 전문계 출신이 속출한다.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성적이 1~2등급 낮은 데도 대학에 합격시키는 것은 계층 상승이나 부의 대물림 완화보다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상처만 안기는 부작용이 더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교육부는 학력이 처지는 정원 외 입학생에게 ‘기초 학습능력 향상 프로그램’이란 것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대학에 가서도 영ㆍ수 과외를 받는 학생들이 장차 졸업 후 사회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발휘하겠는가. 설마 노 대통령은 취직시험에도 ‘가난 쿼터’를 적용할 생각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정답은 자명하다. 가난한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할 기회(환경)를 만들어 주고, 자기 힘으로 대학에 합격하면 학자금을 충분히 지원해 무사히 졸업하도록 돕는 것이다. 적어도 등용문은 제 힘으로 통과하게 해야 한다. 그게 공정하고도 교육적인 ‘배려’다. 콜린 파월도 가난을 무기로 삼지는 않았다. 자기 실력으로 흑인 최초의 국무장관에 올랐다.

노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