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슈] 원자력 발전소는 '메이드 인 재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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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전 건설업체들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도시바(東芝)는 미국의 대형 전력회사인 NRG에너지로부터 텍사스주 휴스턴 근교에 신설하는 135만㎾급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을 수주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27일 보도했다. 대상은 개량형 비등수(沸騰水)형 경수로(BWR) 2기이며, 총사업비는 6000억 엔이 될 전망이다. 2014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시바가 해외시장에서 원전건설의 주 계약자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이번 수주는 미국의 원전업체인 제너럴일렉트릭(GE)과 일본의 히타치(日立)제작소 연합의 공동발주가 유력했다. 실제 NRG 측은 계획 수립 단계이던 지난해 6월 "GE-히타치의 원자로를 채택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조건을 대조하는 단계에서 일본에서의 안정적인 원전건설 실적을 무기로 내세운 도시바가 막판 역전에 성공했다. 도시바가 세계 최초의 개량형 경수로를 건설한 데다 원자로 내의 주요 기기와 증기터빈의 품질과 기술력에서 뛰어난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BWR 부문에서 압도적인 영업력을 발휘해 온 GE를 제치고 도시바가 수주를 따낸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앞서 올 3월에는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이 미 텍사스전력으로부터 원전 2기의 건설사업을 수주했다.

이처럼 세계 원전시장에서 일본세가 떠오르는 것은 장기간에 걸친 원전 침체기에 꾸준히 기술력을 쌓아 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979년 3월 미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의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 이후 미국은 '원전건설 금지' 방침을 25년가량 유지해 왔다. 그러다 보니 그 사이 미국 원전 업체들의 개발.생산능력도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반면 일본 업체들은 국내에서 꾸준히 원전을 건설하며 실적을 쌓아 왔다.

게다가 도시바는 지난해 10월 또 하나의 원자로 기술인 가압수(加壓水)형 경수로(PWR)의 최강자로 불렸던 미 웨스팅하우스(WH)를 인수하면서 세계 표준의 두 방식을 모두 구사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업체로 떠올랐다. WH는 이미 미국에서 2020년까지 신설되는 약 30기의 원전 중 절반 이상의 수주가 사실상 내정된 상태다.

히타치도 GE와 40 대 60의 비율로 세운 합작회사를 통해 원전사업에 뛰어들고 있으나 대부분의 주요 기기를 히타치가 공급하고 있어 GE 입장에서는 히타치를 빼놓고는 원전사업에 뛰어들 수 없는 상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향후 20년간 전 세계에서 신규 건설될 것으로 보이는 150기의 원전 중 대부분을 일본 업체가 수주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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