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승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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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해가 바뀔 때마다, 또는 북한에서 주요정치행사가 있을 때마다 으레 김정일이 언제쯤 국가주석 직을 물려받을 것인가가 화제로 등장해 왔다. 이 문제를 풀어 나가려면 먼저 북한체제와 권력구조의 특성부터 봐야 한다.
북한은 유례없는 1인 독재체제이자 부자세습준비가 끝난 상태다. 또 당·수령·인민의 「3위1체」를 강조하는「우리 식 사회주의」를 부르짖고 있다.
소련 및 동구국가들이 사회주의를 완전히 포기하고 중국마저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등 대변혁이 일어났는데도 북한이「우리 식 사회주의」를 고착하는 게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 및 가계우상화로 체제도전요인을 완전히 제거한 북한에선 가능한 일이고, 따라서 북한체제가 쉽사리 변하거나 무너질 가능성은 적다고 봐야 한다.
김일성의 이름으로 모든 게 정당화되는 체제인 만큼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후계체제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상징적 자리를 김정일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난해 4월 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개 정한 헌법에서 국가주석과 국방위원장을 분리한 것, 중앙인민위원회의 군인사권을 국방위원장에게 넘겨준 것은 이런 사정을 반영한 조치다.
요컨대 김정일은 당 총 비서와 국가주석 직을 승 계할 준비는 다 갖춰 놓고 있다. 사실상의 통치자다. 다만 그가 아버지의 직책을 승계 하는 시기는 김일성 사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김정일에게 국가주석 직이나 당 총 비서 자리를 넘기기 위한 당 대회개최 필요성은 당분간 제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아버지만큼 군림할 수 있는가가 세습정권의 안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은 군부의 향 배와 관련되는 문제이므로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으로 군인사권을 완전히 장악, 행사하게 되면 큰 어려움 없이 극복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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