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시각으로 본 월남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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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월남전은 우리의 정서 깊숙이 영향을 미쳤던 사건이었기만 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채 망각 속에 묻혀졌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의식 전반을 짓눌러 왔던 과거에는 반공 홍보 물 수준이상으로 월남전을 소재로 삼는 것조차 금기시 됐고 베트남의 개방정책이후 제작된 TV다큐멘터리도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낙후성을 강조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가운데 MBC-TV가 2부작으로 선보인 다큐멘터리 『집중기획 베트남』은 월남전을 냉전 이데올로기의 2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피해자인 베트남 사람들의 입장에서 해석하고있어 주목을 끌었다.
여기에서는 월남전을 보는 시각이 냉전이념의 대립이라는 가치판단이 거세된 제3자의 입장이 아니라 베트남민족과 외세의 대립이라는 민족주의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그간 우리에게 월남 패망으로 상징되던 사이공 함락은 동시에 베트남 민족으로서는 독립이라는 새로운 앵글로 그려진다.
예컨대 이 다큐엔터리는 월남전의 역사적 발생 배경을 미국의 참전부터가 아니라 프랑스 식민지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음으로써 월남전을 독립전쟁으로서의 성격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또 미국의 참전 명분이었던 통킹만 사건이 계획된 음모였다는 다소 밝히기 껄끄러운 사실을 얘기함으로써 참전의 당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파월 한국군의 족적 마저도 전승의 현장이 아닌 민간인을 사살한 전쟁당시의 촌가와 한국인 2세들의 고단한 삶의 한 단면을 비춤으로써 대신한다.
이런 장면은 파병당시 극장의 「대한 뉴스」에서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자유의 십자군으로서 파월 한국군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모습들이다.
결국 이 다큐멘터리는 피해자인 베트남의 상처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일종의「낯설게 하기」를 통해 우리 자신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월남전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반성하고 깨달아야 하는가 라는 새로운 물음을 진지하게 내던지고 있는 셈이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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