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적극적 해석 의지/검찰 「부산사건」 불구속기소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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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모임」­무혐의 「도청」­구속방침 바꿔/“중립화·위상강화의 계기” 자체평가
「부산기관장모임」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이 기관장모임 참석자중 김기춘 전법무장관과 도청사건의 국민당 정몽준의원 등 관련자들에 대해 결국 불구속기소로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사건초기 「모임사건=무혐의」「도청사건=구속」이라는 의견이 강력했으나 검찰권 행사의 형평성 논란과 본말전도라는 야당 및 여론의 반발에 부닥쳐 저울질을 계속한 끝에 법률검토 단계에 접어들면서 두사건 모두 불구속기소로 방향을 잡았다.
기관장모임사건의 경우 국민당 고발직후 『전장관에 대한 예우를 고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법률적으로 선거법 위반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수사 일선의 의견은 『선거법의 입법취지 자체가 법에 규정되지 않은 선거운동을 제한하려는 것임에 비추어 적극적 해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기소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건 처리에 있어 ▲선거사범에 대한 강력한 엄벌의지 표명 ▲국민의 법감정 ▲모임사건과 도청사건간의 형평 ▲공소유지 여부 등을 감안,절충안을 찾느라 고심을 거듭해 왔다.
특히 검찰이 전례없는 전직 검찰총수에 대한 기소방침을 정하게 되기까지는 새로운 선거문화정착과 검찰 위상정립을 위해 「읍참마속」의심정과 각오가 필요하다는 수뇌부의 의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내부에서는 이와 관련해 김두희검찰총장이 「모임」과 「도청」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방향을 결정하기에 앞서 수사주체인 서울지검과는 별도로 대검이 복수의 안을 마련해 보고하는 등 「최선의 선택」을 위해 중지를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공안부검사들은 ▲동시 사법처리 ▲전원 무혐의 처리 ▲어느 일방만의 사법처리를 기본 축으로 모든 가능한 경우를 상정한뒤 각 케이스에 대해 사실관계,적용 가능한 법률,검찰 위상에 미칠 영향과 여론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일요일인 27일 오후부터 착수돼 철야작업끝에 완성된 복수안은 28일 변재일공안부장의 손을 거쳐 오후에 김 총장에게 보고됐다는 후문이다.
검찰은 김 전장관에 대한 기소가 이뤄질 경우 부산지역 기관장 모임사건이 검찰중립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는 전화위복의 사건이 될 것으로 기대섞인 자체평가를 하고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아무리 버거운 상대를 만나더라도 「전직 총수마저도 법대로 처벌했다」는 전례가 큰 힘이 돼 당당하게 나갈 수 있고 결과적으로 검찰중립화와 위상강화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사건의 사실관계가 명백할 경우 법률적으로 기소 가능성이 50%만 되면 기소해야 하는 것이 검찰권행사의 기본이라고 전제한뒤 설사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더라도 법률적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검찰에 불명예나 타격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특정후보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언론인 매수까지 거론한 김 전장관에 대한 거센 비난여론을 감안할 때 「불구속 기소」 사건 종결이 검찰의 자체평가나 의미부여만큼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도청사건의 경우 검찰은 사생활보호라는 보호법익이 뚜렷해 처벌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일찌감치 내리고도 오히려 적절한 처벌법규가 없어 법률 적용에 신중을 기해왔다.
검찰은 일찍이 형법개정작업을 벌여오면서 대화비밀침해죄의 신설을 추진해 왔으나 현행 법상으로는 도청행위의 형사처벌법규가 모호해 결국 정몽준의원 등 관련자들을 주거침입 및 범인도피 등 혐의로 불구속입건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은 것으로 보인다.
『김 전장관 기소라는 최소한의 기관장모임사건 처벌로 정몽준의원 등 국민당과 현대에 타격을 입힌 결론』이라고 말하는 일부 정치권과 『여론에 밀린 수사』라는 검찰내부의 이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최소한의 도덕이 법」이라는 원론에 입각,처벌의 필요성에 국민적 공감대가 모아진 두사건에 대한 검찰의 기소방침은 우리나라 검찰권 독립에 일조할 것이며 이같은 검찰의 고심어린 결정을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또 선거법 자체가 지나치게 선거운동을 제한만 하는 구태의연한 법률체계를 갖고있는데다 기술 발달로 범죄가능성·개연성이 예견돼온 도청행위에 대한 처벌법규 하나 마련하지 못한 법문화의 후진성에서 그 문제를 찾으려는 법조인들도 상당수 있다.<이하경·권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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