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학 총장과의 토론회’에서 한양대 김종량 총장, 이화여대 이배용 총장, 연세대 정창영 총장(앞줄 왼쪽부터) 등 대학 총장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듣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6일 청와대에서 열렸던 노무현 대통령과 전국 152개 대 총장들과의 토론회가 대학가에 파문을 불러오고 있다. 대학 총장들은 한국 사회 최고의 지성이자 리더로 통한다. 그런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노 대통령이 "자신들만 자율을 누리려는 집단 이기주의를 버려라" "내신 비중 확대를 깨지 말라" "약자를 배려 않는 강자"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총장들에게 면박을 준 것이다. 교수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며 탄식하면서도, 한편으론 "대꾸도 못하고 침묵한 총장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자성론까지 나왔다.
한양대 정진곤 교수는 "특정 대학(서울대)의 자존심까지 거론하며 노 대통령이 총장들을 압박한 것은 자율이 생명인 대학사회에 큰 충격이었다"며 "이기주의에 빠진 것은 대학이 아닌 정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가 내신 1~2등급 동점 처리를 강행키로 한 것은 수험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다른 대학들도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강대 김영수 입학처장은 토론방식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사전에 질문자를 다 정해놓고, 그나마 1분 질문하면 15분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무슨 토론이냐는 것이다.
김 처장은 "노 대통령이 작심하고 깨러 나왔는데 총장들이 용기를 낼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또 "대학입시는 자율인데 대통령까지 나서 총장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답답해했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모 대학 총장은 "(그런 문제점을 놓고) 대통령과 공방을 벌이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일방적으로 훈시만 듣고 나와 보니 너무 참담했다"고 털어놨다.
"할 말은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고려대 권대봉 교수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생각해서인지 총장들이 침묵하는 보신주의로 일관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시대의 지성으로서 자기의 역할을 보여 주는 것도 교육"이라며 "(대통령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게 총장의 도리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경희대 김종호 교수는 "대통령은 힘으로 교육 정책을 밀어붙이고, 총장들은 입을 다물면 우리 교육은 죽는다"며 "자유로운 대국민 교육토론회를 마련해 교육을 살릴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