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이미 타결된 한·미 FTA 왜 추가 협상 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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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 양측이 추가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한.미 FTA는 이미 4월 2일 양측이 극적으로 합의를 마쳤고, 현재 협정문까지 공개돼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은 법률 전문가들이 참여해 문구 수정 작업을 하고 있고, 30일에는 두 나라 장관이 협정문에 서명 할 예정입니다.

서명을 하면 이제 FTA는 두 나라 국회로 공이 넘어갑니다.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제조약은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기 때문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동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국회에서 동의한다면 마지막으로 양국 정상이 협정을 비준(批准)하게 되고 FTA는 효력이 발생하게 됩니다.그런데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았던 한.미 FTA가 최근 뜻밖의 암초를 만났답니다. 16일 미국이 추가 협상을 제안해 온 것입니다. 노동.환경 등의 분야에서 기존 협정문을 고쳐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온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미국 중간선거 영향=관세를 부과하고, 농산물에 대해 위생 검역을 실시하는 것처럼 외국과의 무역을 규율하는 정책을 통상(通商)정책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이 통상정책의 권한이 한국과는 달리 의회에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통상과 관련된 조약을 체결하고 비준하는 권한을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갖고, 국회는 이에 대한 동의권을 갖는 이원구조입니다. 반면 미국은 두 가지 모두 의회가 권한을 가집니다. 하지만 교역의 범위와 구조가 복잡하고 전문화되면서 인력이 적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의회가 일일이 통상 협상을 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미국 의회도 통상 문제에 대해 한시적으로 권한의 일부를 행정부에 위임하곤 합니다.

이번 FTA 협상도 미국 의회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위임한 무역촉진권한(TPA)에 따라 행정부 조직인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 정부의 파트너로서 협상을 한 것입니다. 이 TPA 아래에서 의회는 단지 맺어진 협정에 대해 찬성.반대만 표시할 수 있습니다. 행정부가 협상을 하고 의회가 가부만 결정하니 절차가 단순해진 것입니다. 만일 TPA가 없다면 의원들은 개별적으로 수정안을 낼 수 있답니다. 의원들이 일일이 자동차 관세는 이렇게 해라, 투자자 보호 규정은 저렇게 해라는 등의 개별적인 요구를 쏟아 내다 보면 방대한 협정문을 완성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TPA에 따라 어렵사리 협상이 이뤄진 한.미 FTA이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던 3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다수당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뀐 것입니다. 민주당은 다수당이 되자 행정부에 대해 이미 체결된 4개국(한국.페루.파나마.콜롬비아)과의 FTA 협정문을 고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답니다. 협정문에 노동.환경 기준이 미흡하다는 것이지요.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환경과 노동권 강화를 중요시하고, 다국적 기업의 이익보다는 공중 보건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행정부는 의회의 비준동의를 위해 불가피하다며 이런 요구를 수용했고, 이에 따라 최근 미국은 한국에 대해 신통상정책을 반영하자고 제안해 온 것입니다.

◆노동.환경 기준 강화가 핵심=신통상정책의 핵심 내용은 노동.환경 기준 강화랍니다. 노동은 1998년 국제노동기구(ILO)의 근로자 기본권선언에 나오는 다섯 가지 핵심 협약을 준수하고 환경 분야에서는 7개 국제 다자환경협약을 지킬 것을 FTA 협정문에 명시하자는 것입니다. 환경은 문제가 없지만 노동의 경우 일부 협약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비준을 안 한 것이 있답니다.

<표 참조>

예컨대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관련 조항은 양국이 모두 비준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국은 복수노조와 공무원들의 파업권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고,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강제노동 금지 부분을 비준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익근무요원이 강제노동 규정에 저촉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반면 미국은 우리가 비준한 아동노동 금지와 고용.직업 차별 금지를 비준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내 소수계인 히스패닉과 흑인 등을 둘러싼 차별소송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비준한 노동협약은 4개이지만, 미국은 단 2개에 불과한 상태랍니다. 미국은 이제 ILO선언을 두 나라가 준수하자며 이를 협정문에 넣고 위반할 경우 관세 혜택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무역 보복이 가능하도록 하자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명분과 실리 사이=미국의 이런 요구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우선 미국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잘 풀어내는 게 급선무입니다. 한번 맺어진 협정을 자국 사정으로 바꾸자는 미국의 일방적 태도에 대한 반감이 많기 때문이지요. 정부도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저자세 협상이라는 비난 여론이 일까 우려하고 있답니다. 안 그래도 한.미 FTA가 정치적인 반미 감정과 연결돼 부정적인 여론이 많은 상태에서 또 하나의 반대 명분을 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나친 명분론보다는 실리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한.미 FTA 타결에 대해 자동차.섬유 등의 분야에서 자국에 불리하게 결정됐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차기 대선에 출마할 예정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도 반대를 선언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수당인 미국 민주당의 요구를 무시한다면 미국 의회 동의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노동.환경 기준 강화가 큰 부담이 없다면 과감하게 미국 측 제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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