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받을 만한 미 「이란­콘트라」수사/윤재석 국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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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재정적자 4조달러의 세계 최대 적자국,마약과 에이즈가 범벅된 난잡한 나라,수일간 치안부재의 폭동이 일어났던 불안한 나라­.
오늘의 미국을 지칭할때 흔히 쓰이는 간명한 표현들이다.
그러고 보면 미국은 이제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타산지석의 표본일 지언정 보고 배울만한 모범선진국은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요며칠 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개 재야법조인과 조지 부시 행정부간의 공방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이같은 판정에 수정이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7년이나 지난 사소한(?) 정치스캔들 하나를 변호사 출신 특별검사가 당당하고 끈질기게 파헤치고 있는가 하면,사건 당시 부통령이었던 현대통령이 공화당 정권에 의해 임명된 특별검사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안쓰러운 모습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란­콘트라사건이 최근에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게된 것은 최근 부시가 캐스퍼 와인버거 전국방장관 등 사건 관련 전직 고위공직자 6명을 특별사면하고 난 직후부터. 월시특별검사는 24일 이같은 조치에 대해 『이제 부시도 조사대상』이라고 즉각 선언했고,26일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특별검사가 88년에 행한 부시의 증언테이프를 넘겨주면 나머지 모든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사건 관련 자료를 모두 제출했다』는 부시의 발언과 배치돼 다시 관심을 끌었고 월시검사는 부시 퇴임후 그를 본격 신문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 과정에서 돋보이는 것은 특별검사의 꼿꼿한 수사태도도 그렇지만 임기 막판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길지도 모를 대통령 스스로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풍토,바로 그것이다.
눈을 안으로 돌려보자.
건영아파트 특혜의혹·군장비 불법유출사건 등 6공말기에 터졌던 대형 비리사건이 대선 와중에서 진상파악과 후속수사가 구렁이 담넘어가듯 슬그머니 실종된 것도 묵과하기 힘든 판에,발생한지 열흘남짓된 이른바 「부산기관장모임 사건」이 어느새 명칭부터 본말이 전도된 「부산도청사건」으로 바뀌어 「고자질한 X이 더 나쁘다」는 식으로 치닫고있다.
모임의 주최자로 지목된 전직 검찰총장이 단 한차례의 신문직후 20여명의 옛부하들로부터 깍듯한 전송을 받은 미담(?)까지 탓할 수는 없겠지만 장본인을 빼놓고 변죽만 울리는 후속수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침묵이 어리석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사법당국과 현정부,그리고 차기정권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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