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터만 닦은 1년/될듯 말듯 명암교차한 92년 결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월 합의서 발효로 화해 협력 디딤돌 마련/실질성과 없이 양측 통일정책조정기 진입
지난 한햇동안 남북관계는 명암이 크게 교차했다. 우선 92년은 정부의 과거 5년간에 걸친 북방정책 노력이 구체적인 결실로 나타난 1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지난 2월19일 남북간의 기본합의서가 발효됨으로써 47년간 이어져온 대결과 불신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화해·협력의 시대로 넘어가는 기틀을 마련했다.
주변 국가들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지지가 확고해져 외적여건이 좋아진 것도 큰 수확이었다.
그러나 화해의 역사를 일구어가는 과정에서 여전히 냉전시대의 역사와 중첩되는 상황이 많이 생겨났다.
작년 12월 남북합의서 채택이후 쾌속항진을 해왔던 남북관계가 지난 10월 「남한조선노동당사건」이라는 암초를 만나 9차 서울고위급회담이 중단되는 등 사실상 동면기에 접어든 것은 그 좋은 예다.
북한은 팀스피리트훈련,이인모문제 등을 내걸고 이에 맞섰으나 결국 남북관계 냉각의 가장 큰 이유는 핵문제와 남북 내부에 있는 냉전적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적잖은 사람들은 이런 본질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상태에서 남북관계 장래를 다소 불투명하게 보기도 한다. 또 이산가족 등 피부로 와닿는 문제들이 여전히 「미결상태」로 남아 남북관계의 진전이 사실상 거의 없었다고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금년은 남북관계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속에 출발했다.
북한이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고 핵사찰을 받기도 했고 잇따라 남북합의서와 비핵화선언이 2월19일 6차 평양회담에서 발효됐기 때문이다.
사실 통일조국을 양지바른 언덕위에 집을 짓는 것이라 비유한다면 기본합의서 발효는 집까지 이르는 길을 닦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쌍방은 광복절을 전후해 「이산가족 노부모 방문단 및 예술단」을 교환키로 하고 그후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하기 위해 판문점에서 두차례(10월1일,10월5일) 대표접촉을 가졌다. 거의 성사되는듯 했던 이산가족재회는 이인모라는 장애물에 부닥쳐 좌절된다.
남측은 ▲고향방문단 사업의 정례화 ▲판문점 면회소 및 우편물 교환소 설치 ▲강제 납북된 동진호 선원의 송환 등에 북한측이 동의할 경우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의 송환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이인모 송환과 판문점 면회소 설치를 맞바꾸는 식으로 두가지 문제에 국한시켜 토의할 것을 고집했다.
남북적십자회담의 경우 남측은 빠른 시일안에 재개키로 한 교류·협력부속합의서 제16조에 따라 제11조 남북적십자 본회담을 11월중 평양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했으나 북한측은 화랑훈련과 독수리훈련을 중지하고 팀스피리트훈련 재개 결정을 취소해야 한다면서 거절했다.
이에 따라 이산가족문제를 논의해야할 남북적십자본회담은 지난 85년이후 계속 열리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기대를 걸었던 남북간의 경협만 해도 그렇다. 지난 88년 10월 물꼬를 튼 남북경제교류는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꾸준히 늘어왔고,지난 7월 북한 김달현부총리가 남한을 방문,남한 산업계를 돌아보는 것을 계기로 바람직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듯 했다.
그러나 남북경협은 핵문제와 연계되면서 제동이 걸렸고,따라서 북한이 핵문제 타결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한 이 문제는 풀기 어렵게끔 되어있다.
기업인의 방북이 허용되지 않으면서 사실상의 남북경협은 태동단계에서 뿌리가 잘렸고 예전처럼 제3국을 통한 간접교역으로만 남북간 교류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외교형」인 연형묵총리를 경질하고 「경제실무형」인 강성산을 총리로 기용한 것은 당분간 대미일 수교나 고위급회담과 같은 외교분야보다는 외국인 투자유치 등 경제개방을 가속화해 나가려는 포석으로 보여 남북경협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전될 소지는 있다.
지금은 남북한이 모두 통일문제에 있어 정책조정기에 접어든 것이다.
북한은 나름대로 과거 남북대화를 통한 수확을 저울질해 보고 새로운 대남정책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고,남한은 남한대로 정부 이양과정에서 통일정책의 큰 줄기는 바꾸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대화의 전략과 전술을 새로이 마련하는 등 조정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박의준기자>
□92년 남북관계 일지
▲1.1=노태우대통령 신년사에서 『92년을 한민족공동체 실현의 원년이 되도록 하겠다』고 천명.
▲1.7=국방부,92팀스피리트훈련 중단 발표.
▲2.18∼21=제6차 남북고위급회담(평양)­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 발효.
▲3.19=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1차 회의.
▲5.5∼8=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서울)­남북연락사무소를 비롯한 부문별 이행기구 구성.
▲5.11∼16=IAEA 사무총장 일행 북한 방문.
▲5.22=비무장지대 무장병력 침투사건 발생.
▲7.19∼25=북한 김달현부총리,서울방문.
▲9.1∼6=「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제3차 토론회(평양).
▲9.15∼18=제8차 남북고위급회담(평양)­분야별·부속합의서 채택·발효,화해공동위 구성.
▲10.6∼9=남포조사단 방북.
▲10.6=국가안전기획부,「남한조선노동당」 대규모 간첩단 사건 발표.
▲10.8=한미연례안보협의회 팀스피리트훈련 재개결정.
▲10.13=정부,최각규부총리 방북 연기 통보.
▲10.27=북한 당정사회단체 연석회의,팀스피리트훈련 재개시 고위급회담 등 모든 남북대화·접촉 중단 결정.
▲12.4=안병수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대변인,팀스피리트훈련 철회 촉구. 남북대화중단 시사.
▲12.11=북한,연형묵총리 경질,후임에 강성산 임명.
▲12.21=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9차 남북고위급회담 무산.
▲12.24=핵통제공동위원회 재개를 위한 위원접촉 무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