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10대들 「랩」열풍 가요시장 점령-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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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올해의 방송은 민영방송 SBS의 출범으로 우리방송의 구도가 재편된 한해였다.
80년 동양방송이 사라진 이후 독과점체제에 안주해왔던 KBS·MBC에 SBS의 존재는 좋았던 한 시절을 마감하고 다시 치열한 경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편성 차별화와 시청률 우선 제작의 공격적 전략을 앞세운 SBS의 드라마가 의외의 호조를 보이자 방송사들의 시청률 경쟁은 예상보다 빨리 불붙기 시작했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방송사들의 전력투구는 SBS-TV의 『그것이 알고 싶다』, KBS 1TV의『성공시대』등과 같은 새로운 양식의 프로를 낳게 한 계기가 되기도 했으나 프로의 선정·저질화를 부추긴 부작용이 더 컸다.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봇물처럼 쏟아졌고 여과 없는 키스신이 그대로 안방에 방송됐다. 쇼 분야도 10대 취향의 프로 일색이면서도 정작 이들에게 유익한 내용은 거의 없고 자극적인 대사나 현란한 옷차림. 선정적인 카메라 워크로 눈요깃거리 제공에만 몰두했다.
그 결과 지난달에는 방송위원회가 날로 도를 더해 가는 선정화 추세에 쇄기를 박기 위해 SBS-TV의 드라마 『모래 위의 욕망』에 대해 방송사상 처음으로 연출자 연출중지 명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런 드라마의 선정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올해 크게 인기를 모았던 『사랑이 뭐 길래』『질투』『아들과 딸』등의 드라마들이 선정성과는 관계없이 독특한 소재의 개발과 감각적인 연출로 성공, 우리 드라마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프로그램의 선정화 외에 올 방송계의 가장 큰 화제는 TV가 선거운동의 중심으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이번 14대 대선에서는 TV토론에 대한 여론이 그 어느 선거때보다 높았고 TV연설이 실시됐으며 TV정치광고가 첫선을 보였다.
정치광고는 자칫하면 흑색선전의 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당초의 우려와 달리 유권자들의 정치참여를 유도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넓혀나 가야할 분야라는 여론이 높다.
이밖에 공권력의 투입으로 결말이 난 MBC의 장기파업은 올 방송계의 가장 큰 상처로 앞으로 우리 방송조직의 체질강화를 위한 노사간의 노력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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