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새 내각 개혁지향 고수/생산확대로 경제난 타개 겨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전총리측 인물 대폭 잔류
23일 밤 확정 발표된 러시아의 새 내각은 당초 서방측의 예상과는 달리 가이다르팀의 개혁적 인사들이 대거 잔류하는 개혁지향 내각으로 결정됐다.
비록 러시아의 대외채무문제를 전담했던 표트르 아벤 대회경제장관이 사임했지만 개혁파인 안드레이 네차예프 경제장관,안드레이 코지레프 외무장관,알렉산드르 쇼힌 부총리,아나톨리 추바이스 사유화 위원장 등의 집단 사표소동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로써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중국방문 일정 단축까지 몰고오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러시아의 신임 내각은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밝힌대로 개혁을 지속하겠다는,「서방측이 신뢰하고 있는 인물」들을 포함하는 인물들로 조각이 완료됐다고 할 수 있다.
옐친 대통령과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이번 조각을 위해 러시아 정·재계의 각종 정파와 활발한 막후 교섭을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교섭의 결과 옐친대통령은 이번 내각의 인선에 민주러시아파가 절대 사수를 주장한 쇼힌,네차예프,추바이스 등을 포함시킨 대신 산업동맹과 보수파들이 반드시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아벤을 사임시켰고,코지레프의 경우는 보수파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의회의 인준에 그의 운명을 맡기는 식의 정치적 타협을 이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조각에 가이다르팀의 핵심적인 개혁파 경제각료들이 유임되었다고 해서 러시아의 경제정책이 가이다르식 개혁을 지속할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신임 체르노미르딘 총리를 비롯해 슈메이코 부총리,히자부총리,게라시첸코 중앙은행 총재 등은 가이다르의 거시적 통화이론을 통한 긴축논리에 반대하고 산업생산활동의 증진을 위한 여신 확대 등 생산장려 정책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회내의 대다수 정파도 가이다르­국제통화기금(IMF)식 경제개혁이 폴란드 등 중소규모 국가의 경제개혁에도 제대로 먹혀들어가지 않고 있는데 사유재산제도의 경험이 없던 러시아의 초대규모 국가경제 체제 개혁에 이들의 논리를 전적으로 따르는 것은 러시아 경제를 파괴할 뿐 재건을 위해선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경제정책은 이미 통계가 밝혀주고 있듯 명령 통제적인 옛 계획경제체제를 파괴하는데는 크게 성공했지만 이를 산업의 생산이라는 경제의 실질적인 건설과 연결시키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기대했던 생산·공급의 확대는 이루어지지 않은채 10배에서 1백배에 이르는 생필품 가격의 급등과 실업자의 급증,18∼20%에 이르는 산업생산의 하락,기업 파산 등의 현상만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현상에 대해 지난번 인민대표 대회에서 보여졌듯 의회내의 산업동맹을 비롯한 정부·의회·일반시민들의 불만과 압력은 이미 팽배해질대로 팽배해진 상태다.
체르노미르딘 신임총리가 취임 일성에서 밝혔듯 러시아내에는 개혁에는 찬성하나 개혁의 방법에 대해 이견을 갖고 있는 세력이 수구 공산주의 세력에서부터 중도개혁파인 시민동맹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따라서 신임 내각이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며 이는 옐친과 체르노미르딘 모두 신임 내각의 제1과제가 산업생산의 확대와 시민생활의 향상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