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서울대 자존심 때문이라면 상응조치 할 수밖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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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자존심 때문에 입장이 그렇다면 정부로서도 어쩔 도리 없이 상응하는 조치를 면제하기도 어렵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장무 서울대 총장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26일 열린 대학 총장과의 토론회에서 총장들의 질의에 이어 노 대통령의 말이 시작되고 얼마 안 돼서다. 토론회를 생중계하던 KTV(국정홍보처 영상홍보원 소속 케이블TV)는 총장 152명 가운데 노 대통령의 우측에 앉아 있던 이 총장을 클로즈업했다. 화면에 비친 이 총장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서울대는 전날 2008학년도 대입에서 내신 1, 2등급에게 만점을 주기로 한 결정을 바꾸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행사 명칭은 토론회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의 훈시를 듣는 자리처럼 돼버렸다. 서울대.연세대를 포함한 12개 대학 총장의 질의에 이어 노 대통령의 일방적인 강의가 진행된 것이다. 노 대통령은 '공격적인 화술'로 대학 총장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그는 "집단이기주의를 버리라"고 총장들을 밀어붙이는가 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대학 자율도 규제받을 수 있다"고 강하게 말했다. 노 대통령의 말은 토론회에 이어 낮 12시10분부터 진행된 오찬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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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대입 합의를 지켜라"=노 대통령은 2008학년도 입시에서 내신(학생부) 비중 논란에 대해 "이미 2004년에 정부.학교.학부모 등 당사자 간에 합의가 된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로 깨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내신 비중 50% 강화 방안에 반발하는 사립 6개 대학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들 대학을 '자신들만 자율을 누리려는 어느 집단''약자를 배려 않는 강자''완장 찬 사람'에 비유했다. 외국어고도 공격 대상이 됐다. 노 대통령은 "(2008학년도 대입으로 불이익을 보는) 외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언론이 뒤집어졌다"고 비판했다. 부동산 문제를 얘기하면서 '강남 대 비강남'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논리가 이날도 등장한 것이다.

노 대통령의 훈시는 오찬을 하면서도 계속됐다. "정권 바뀌어도 (교육)정책 크게 바뀌리라는 걱정도 하지 마시고, 또 (바뀌리라는) 기대도 크게 안하시면 좋겠다"고 말해 총장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사립대 총장은 "노 대통령이 못박듯 정권이 달라져도 바뀔 수 없다고 확실히 말했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내신 반영 비율 강화'에 반기를 든 일부 대학이 임기 말에 집중되고 있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 왔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정권 바뀌면 달라질 텐데'라는 생각을 갖는 대학들이 대입 제도를 흔들려 한다"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도 교육부의 이런 인식과 관련이 있다. 이날 발표한 '기회균등할당제'는 일러야 2009년에 도입되는 점도 의식한 듯하다.

노 대통령은 대학들이 겁을 내는 '재정지원 불이익'에 대해서도 짚었다. 그는 "공무원 조직을 만만하게 볼 조직이 아니다. 나쁜 것을 고치는 데 있어서도 만만치 않다"고 총장들을 압박했다. 정부의 내신 강화에 반발하는 대학에 범정부 차원에서 불이익을 줄 것이라는 신호를 다시 한번 준 것이다.

◆"얘기하기 힘든 분위기"=노 대통령은 총장들에게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성공한 사람들이고 우리 사회의 강자들"이라며 "강자가 강자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 내면 사회는 분열된다"고 말했다. 그런 뒤 "배려할 줄 아는 사람, 절제된 행동,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할 사람을 길러 달라"고 당부했다. 총장들은 토론회 현장에서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서울대 이 총장은 "우리 대학은 지역균형 선발 등 다섯 가지의 다양한 전형을 하고 있고, 학생 구성에 있어서 다양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총장들은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대학의 어려움을 얘기하고 건의하는 데 질의시간을 썼다. "재정사업 지원 때 대응 자금(매칭펀드) 요건을 완화해 달라"(정창영 연세대 총장), "여성 육성에 관심과 지원 부탁한다"(이화여대 이배용 총장) 등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한 사립대 총장은 "대통령 앞에서 뭐라고 얘기하기 힘든 분위기였다"며 "학생 잘 키우라는 말은 듣기가 민망했다"고 말했다.

강홍준.박수련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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