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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입장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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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리스트나 베를리오즈 같은 낭만주의 음악가들이 19세기 유럽 상류사회의 귀부인들과 염문을 뿌린 건 귀족과 맞먹을 만한 신분이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분 상승의 이면에는 공연 입장료의 등장이라는 산업사회의 새로운 흐름이 있었다. 궁정이나 귀족·교회의 후원에 기댄 바흐·>헨델 시대와 달리 돈만 내면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대중 연주회 시대가 열리자 음악가들은 실력껏 청중을 끌어 모아 돈을 벌었다.
 
입장료는 특권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공연예술을 근세 시민들에게로 확대하는 물꼬를 터준 셈이다. 하지만 공연의 생존 기반을 확실히 책임져 주진 못했다. 미국의 문화경제학자인 보몰과 보웬은 1966년 펴낸 '공연예술, 그 경제적 딜레마'에서 ‘공연예술 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임금이 뛰는 만큼 생산성을 높일 수 없어 근본적으로 적자산업이 될 수밖에 없다’고 규정했다.
 
근래 우리 공연 입장료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건 이런 ‘적자 필연론’의 망령을 떨쳐보려는 몸짓인지 모르겠다. 우리 창작 뮤지컬조차 2002년 10만원(명성왕후)을 돌파한 최고 좌석 티켓 가격이 5년 만인 지난달 15만원(대장금)으로 올랐다. 1990년 후반 서울 한강변 아파트 조망권의 가치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극장 내 무대 조망권의 가격 차도 덩달아 커진 게 공교롭다. A·B·C 정도이던 좌석 등급이 세포분열하듯 S·R·VIP 등으로 늘어난 게 그 무렵이다. 싼 표부터 차근차근 매진되던 피라미드형 구매 패턴은 옛 일이다. 중간 등급 표부터 팔리는 호리병형을 지나 요즘엔 최고·최저가 표부터 매진되는 모래시계형이 정착됐다. 공연장도 계층 양극화 바람의 무풍지대가 아니다.
 
본지의 조사 결과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초청 공연의 국내 입장료가 무려 40만원 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뮤지컬 등 다른 장르의 대형 공연도 사정은 비슷하다. ‘비쌀수록 좋은 작품’으로 치부하는 일부 관객의 속물근성과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간 기획사의 ‘허영 마케팅’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흔히 ‘예술은 개인 취미니까 비용도 개인이 다 부담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공연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을 인색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또 메세나 기업들이 후원 대가로 과다한 티켓을 되돌려 받는 관행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입장료는 공연예술의 민주화와 대중화를 꽃피웠다. 하지만 과도하게 비싼 입장료는 서민들에게 위화감과 냉소를 낳을 뿐이다.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