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리더십/대승 기반 「과감한 개혁」가능(김영삼시대: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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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물정부」소리듣던 6공이 교훈/기득권층 반발 극복이 과제로
김영삼대통령당선자는 이번 선거운동기간중 「강력한 정부」와 「신한국 창조」를 수백번 강조했다.
노태우대통령의 5년통치기간중 밀어닥친 민주화열풍속에서 기존질서와 권위가 무너지고 부정부패와 황금만능풍조가 만연된데다 경제가 급속히 악화돼 국민들이 대체로 넌더리를 내고 있다는 현실전환에 따른 것이었다. 김 당선자 주변에선 「강력한 정부론」이 상당히 먹혀들었다고 보고 있다. 김 당선자가 신한국 건설과 강력한 정부를 내세우자 민주당이 즉각 『한국병은 민자당병』이라고 공격했지만 이 구호에 대한 공감대를 누르지는 못했다.
그만큼 국민들은 「물정권」의 무기력에 지쳐있었고 득표결과로 볼때 김 당선자의 「강력한 정부」를 추진할 토대는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직선제 대통령 선거사상 가장 많은 표차,군부재자투표의 영외실시와 중립내각 출범 등으로 관권선거라는 시비걸기가 어렵게 돼있다. 노 대통령에게 꼬리표처럼 붙어다녔던 30%대 대통령이란 얘기도 42% 득표로 사라졌으며 야당도 깨끗이 승복하고 축하했다.
호남과 서울을 제외한 전국에서 승리함으로써 특정지역 대통령이란 비아냥도 듣지 않게 됐고 3당합당을 둘러싼 「변절」시비도 사라지게 됐다.
『깨끗한 선거과정과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정권의 정통성을 확립해야 강력한 정부가 될 수 있다』는 그의 목표는 모두 달성된 셈이다.
정치권의 풍향도 그에게는 역대 어느 때보다 좋다. 김 당선자는 최근 6공과 비교,『노 대통령정권 출범당시에는 13대총선이 남아 있었고 5공청산의 역사적 과제가 정국운영에 큰 부담이 됐다』면서 『그러나 나는 그런 부담없이 차분히 차기집권을 구상할 수 있다』고 홀가분한 심경을 피력한 바 있다.
야당의 거목인 민주당의 김대중후보는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국민당도 정주영대표중심체제로 방향을 잡았으나 당내 결속력에는 여전히 문제가 많다. 중심축을 상실한 야당은 체제정비에 바빠 당분간 정면도전을 시도하기 어렵게 돼있다.
게다가 민자당은 원내 과반수의석을 차지해 국회에서조차 그의 강력한 정부를 튼튼히 뒷받침할 수 있다.
김 당선자는 23일 『차기정권은 6공 2기가 아니라 「2공」』이라고 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의 독재정권·군사정권이 아니라 정통성을 지닌 문민정권이란 자신감의 표현이다.
물론 그가 내세우는 「강력한 정부」는 권위주의적 독재정부는 분명히 아니다. 그렇지만 소신껏 국정을 이끌어 나가는데는 어느 때보다 호조건을 갖춘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강력한 정부 구상의 발목을 붙잡는 부정적 요소도 적지 않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나타났듯 국민들의 최대관심사는 물가안정과 경제회복이다. 5년전 노 정권은 전두환정권으로부터 1백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와 물가안정을 물려받았지만 김 당선자는 물가고와 무역적자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
선거결과에서 나타난 호남의 내면화된 지역정서는 물론 중부권의 푸대접론도 싸안고 갈 수 있는 「대탕평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 인사에서 산술적 균분만을 고집한다고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정치권에서의 불안요소도 언제든 재연될 소지를 안고 있다. 야권을 이끌고갈 뚜렷한 정치지도자가 한순간 사라져버림으로써 생긴 힘의 공백은 언제든 정국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다.
당내의 계파갈등도 문제를 야기했던 대부분의 인물들이 이미 탈당해버려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대선결과에 대한 논공행상이 잘못될 경우 불협화음을 일으킬 수 있다.
무엇보다 김 당선자가 「대담한 개혁」을 추진할때 범여권으로 일컬어지는 기득권계층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 또는 극복하느냐가 핵심과제다.
민자당내에는 독재정권에 대항해 투쟁했던 민주세력과 3공때부터 6공까지 근대화를 추진해온 개발독재세력이 혼재돼 있다.
이들은 김 당선자가 정권의 연속성을 부정하고 개혁을 시도할 경우,다시 말하면 자신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기득권의 희생을 강요할 경우 강력히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김 당선자가 주장하는 「개혁」은 좌파적 의미가 아니라 군사독재정권의 무리한 체제유지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된 부정부패구조의 청산을 의미하는 「건강한 보수주의」다.
김 당선자측은 『기득권세력중 개혁에 적응하는 인물은 살아남을 것이지만 끝까지 반대한다면 치우고 갈 수 밖에 없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 특유의 여론정치실력을 발휘,국민의 지지와 대의명분으로 이들의 반발을 잠재우겠다는 것이다.
이런 과제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한국을 창조하는데 성공했느냐의 여부는 길게 잡아 취임후 1년,짧게는 취임후 2개월에 판가름날 것으로 김 당선자측은 보고 있다.
우선은 그가 『돈으로 권력을 사려는 것은 총칼을 든 쿠데타보다 나쁘다』는 견해를 피력한 현대그룹에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사다. 이와 함께 취임을 준비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총리 등 조각 인선에서 그의 의지와 능력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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