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룩한 현대·포철/「2L2H」그룹 느긋/재계 판도변화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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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YS와의 친소따져 움직임 주시/「유착」땐 여론에 밀려 손해볼수도
재계가 선거결과를 놓고 저울질이 한창이다.
당초 김영삼당선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물밑에서 그를 지지해온 기업들은 희색인 반면 대선으로 인해 YS와 불편한 관계가 형성된 현대그룹과 포철 등은 반대다.
또 호남쪽에서 출발한 기업인 기아·금호·해태그룹 등도 『정치와 관계가 없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시무룩한 표정이다. 재계는 선거 이후 차기정부에서의 재계 판도변화를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기업들이 그동안 정치판의 눈치를 살피느라 겉으로는 중립을 지켰지만 물밑에서는 정치자금을 통한 유력후보와 줄대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대부분의 기업들은 그동안 거래해온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이번 선거에서 YS의 승리를 사전에 점치고 있었으며 속으로는 「중소기업 위주의 정책을 들고나온 DJ가 당선되면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재벌해체를 부르짖는 CY가 당선될 경우에는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크게 우려해왔다.
재계는 YS 당선으로 가장 주목받는 그룹으로 럭키금성과 롯데를 꼽고있다.
이들은 다른 기업들보다 YS와 훨씬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는데 우선 YS와 함께 경남·부산 지역에서 기업을 일으켰다는 공통적인 연고에다 서로 겹치는 인맥도 많다.
럭키금성의 경우 김 당선자의 뒤에서 경제정책을 깊숙이 조언하는 차동세박사가 럭키금성 경제연구소 소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9월 전경련이 느닷없이 「금융실명제 찬성」을 들고나온 것도 차씨가 『어차피 대선과정에서 금융실명제가 핫이슈가 될 것이므로 전경련에서 먼저 치고 나가는게 좋다』고 구자경회장을 설득,구 회장이 전경련에서 강력히 밀어붙인 끝에 나온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럭금그룹의 대외관계를 총괄하는 구평회럭금상사회장과 이번에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헌조 금성사사장도 김 당선자와 대학을 통해 선이 닿아 있으며(구 회장은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고 이 부회장은 서울대철학과 후배) 이미 오래 전에 맺어진 친분을 그동안 계속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롯데도 같은 부산 출신이고 오래전 야당시절부터 김 당선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롯데물산 김웅세사장이 김 당선자와 사돈간이면서 그동안 김 당선자에게 경제분야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신격호회장의 동생인 신준호그룹부회장은 경남고 출신으로 김 당선자와 관계가 멀지않다.
롯데 신 회장은 이번 대선과정에서도 상업은행 이희도지점장 사건때 정주영회장이 『YS에게 정치자금을 조달해 주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밖에 지난 4월 부산에서 선박 진수식때 조중훈회장이 직접 『YS를 대통령으로 밀자』고 발언해 주목을 받았던 한진그룹과 부산에서 기업을 일으킨 한일그룹도 재계에서는 YS와 가까운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이른바 2L2H가 바로 이들이다.
이에 따라 재계는 이들 그룹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데 ▲럭금은 안정위주의 경영에서 다음 정부에서는 과감한 확대정책으로 나가지 않을까 점치고 있으며 ▲롯데는 제2롯데월드부지 ▲한진그룹은 영종도 신공항 건설과 KAL기 북경취항 문제 ▲한일그룹도 차기정부에서 국제그룹 흡수 이후 그동안 못한 사업다각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지 않을까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그룹마다 차기정부와의 관계가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지만 정작 이런 관계가 「사업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눈밖에 난 기업을 괴롭힐 수 있는 힘은 여전히 갖고있지만 예전처럼 한 기업을 화끈하게 밀어줄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서 선경그룹 좌절했듯이 「지켜보는 눈」들이 워낙 많아,대규모 프로젝트에서는 정치권과의 밀접한 관계로 「유착혐의」를 받을 경우 오히려 여론에 밀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재계는 대선 도전세력이었던 현대나,YS에 비협조적이었던 포철에 대해서도 「정치보복」이란 인상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들이 헝클어진 매듭을 스스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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