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제치고 부시와 독대 초법적 테러 대책 만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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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워싱턴 포스트가 역대 미국 부통령 중 가장 강력한 힘을 휘둘러온 딕 체니(사진)의 실체를 파헤치는 탐사보도 기사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신문은 200여 명에 이르는 전.현직 관리를 인터뷰해 체니 부통령이 지난 6년간 테러와의 전쟁과 각종 국내 정책에 끼쳐온 영향력을 폭로하는 4회짜리 시리즈를 24일 시작했다.

시리즈 타이틀은 '낚시꾼(angler) 체니의 부통령직 수행'. '낚시꾼'은 미 대통령을 경호하는 비밀감찰부(Secret Service)가 붙인 체니 부통령의 암호명이지만 '모사꾼'이라는 뜻도 있다. 다음은 24일과 25일 연재분 요약.

◆부통령직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조지 부시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댄 퀘일은 2001년 막 부통령 임기를 시작한 체니를 만나 "부통령이 할 일은 해외순방, 정치자금 모금, 유명 인사 장례식 참석 등등"이라 일러줬다가 무안만 당했다. 체니가 "내 일에 대한 나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이해는 다르다"고 일축했기 때문이다.

신문은 체니가 전임자들과 달리 모든 국사에 관여하기를 원했고, 부시도 이를 받아들여 백악관의 모든 회의에 참석하고 의견을 말할 권한을 줬다고 보도했다.

이는 사실상 대통령 비서실장과 같은 권력이지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실체도 없다는 특성이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남다른 노력과 비밀주의=대통령의 정책결정에 접근하기 위한 체니의 노력은 집요했다. 체니는 매일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 비밀감찰부의 보고서를 읽고 6시30분에 따로 정보 브리핑을 받아 대통령이 주목할 사안이 뭔지를 미리 파악한 뒤 대통령 브리핑에 참석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또 대통령이 국내 어디를 가든 보안장치가 된 화상을 통해 그와 직접 대면하기를 고집했다.

극도의 비밀주의도 그의 무기다. 그는 참모들의 인적사항이나 규모를 감추고, 방문자 기록도 비밀감찰부를 시켜 정기적으로 폐기하고 있다.

◆초법적 반테러 대책 논란=체니는 2001년 9.11 테러 발생 당일 백악관 지하벙커에서 법률 자문관인 데이비드 애딩턴과 백악관 법률고문 앨버토 곤잘러스(현 법무장관) 등과 함께 테러 용의자에 대한 '영장 없는 도청 허용'을 고안했다.

테러 용의자는 영장 없이 기소될 수 있고 재판받을 권리도 박탈되는 초법적 조치다. 법무부 법률고문이던 한국계 존 유 버클리대 법학교수가 이 조치의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체니는 이런 내용을 4쪽짜리 극비문서로 만들어 2001년 11월 13일 부시 대통령에게 보여준 뒤 한 시간 만에 그의 서명을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정식 라인에 있는 관리들은 배제됐다.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몰랐다.

◆사실상 고문 허용=2002년 초 테러 용의자들이 관타나모 미군기지에 수용되기 시작하자 체니는 이들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곤잘러스, 존 유 등과 또 다른 모의를 한다. 헌법상 금지된 고문 대신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모욕을 주는' 신문기법을 테러 용의자들에게 허용하는 조치다. 이는 2년 뒤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파문이 터지는 원인이 된다.

◆?보도 배경=이라크 전쟁과 미군의 인권유린 등 부시의 실정 상당수가 체니의 책임인 것으로 지목되고 있으나 그가 잘못을 시인한 경우는 전혀 없다. '책임은 지지 않고 권한만 엄청난' 부통령의 국정 농단으로 정책 왜곡이 심화하고 있다는 비난이 높아지면서 언론이 그 실체를 파헤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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