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위원장 말 따로 정책 따로 규제 쏟아내 관치 금융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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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사진) 금융감독위원장은 "훌륭한 심판은 휘슬을 자주 불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감독 당국이 일일이 간섭하기보다 시장의 자율기능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난달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금융 감독은 시장 기능을 살리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부분에만 감독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직후 한 은행장 간담회에서도 특유의 '휘슬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최근 금융 감독 당국은 이런 윤 위원장의 소신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위험을 한 발 앞서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 금융 회사들은 "관치금융이 도지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 강정원 행장은 21일 한 심포지엄에서 "은행 경영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있다"며 예금.대출이 막혀 어려운 사정을 우회적으로 털어놓았다.

지난해 말부터 주택담보 대출 규제가 강화된 데 이어 올 들어 중소기업 대출 규제, 신용카드 마케팅 규제책이 나왔다. 최근엔 과열 증시를 식히기 위해 증권사의 신용 융자 단속에 나섰다. 신용 융자의 경우 이달 초만 해도 "선진국의 시가총액과 비교하면 오히려 낮은 수치"라고 주장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라"는 발언이 나오자 입장을 180도 바꿨다.

잇따른 강공책은 표면적으로 효과를 보았다. 은행권의 주택 담보대출 증가세는 확연히 꺾였다. 1년에 20조원 이상씩 불어나던 대출 잔액이 제자리 걸음을 하다가 4월에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증시도 급상승에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풍선효과'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과잉 유동성에 대한 근본적 처방 없이 대증요법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올 들어 은행권의 주택 담보대출은 1조2000억원 늘었지만 중기 대출은 22조3000억원 불어났고 신용 대출도 덩달아 늘었다. 은행들이 주택 담보대출이 막히자 중소기업 대출과 신용 대출 쪽으로 영업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은행권 돈줄을 집중 단속하면서 은행권은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은행권의 저축성 예금 잔액은 지난해 12월 492조원에서 올해 4월 481조원으로 줄었고, 이에 비해 증권사들의 CMA(종합자산관리계정: 어음이나 채권에 투자하여 그 수익을 고객에게 돌려주는 실적배당 금융상품)는 같은 기간에 8조원에서 16조원으로 두 배가 됐다.

한국은행도 금리에는 손대지 않고 변죽을 울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지준율을 높인 데 이어 이번에는 총액대출한도를 축소했다.

윤 위원장은 이에 대해 "과잉 유동성은 금리 외엔 다른 방법이 없지만 경기 부진과 부동산 급등 등 다른 지표가 발목을 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편법은 또 다른 편법을 낳게 마련이다. 한 금융회사 경영자는 "이제 선수들이 나서서 심판을 자처하는 정부.금융 당국.한은에 휘슬을 불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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